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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06. 2023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청춘드라마? 막장드라마? 

K와 처음 헤어진 시점은 집에서 독립하기 조금 전이다.


원래  K와는 길게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이차이도 있었고 원거리 연애이기도 하고 적당히 만나다 적당히 거리 핑계로 헤어져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KTX 안에서 정말 눈이 녹아내리도록 울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홀린 듯 편지를 썼다.


'나는 사실 너에게 말하지 못한 사실이 있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고, 무시당할까 봐 무서웠던 진실.

난 사실 남자도 여자도 아니래. 지금의 나는 여자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지만 나의 몸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그러니 너도 부디 날 잊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길 바라. 니 덕분에 좋은 추억 많이 남겨서 행복했어.'

대략 이런 내용의 편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K로부터 카톡이 와있었다.

'어젠 잘 들어갔어? 우리 그래도 인사정도 나눌 수는 있는 사이인 거지?' 


우선은 답장하지 않았다.

밤새 쓴 편지는 부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굳이 헤어질 거라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무슨 마음에서였는지는 모른다. 그냥 변덕이었을 수도 있다. 그에게 편지를 부쳤다.

'편지 하나 갈 거야.. 그거 읽고 잘 정리했으면 좋겠어. 행복해 안녕.'

편지를 부치고나서 오전에 받은 카톡을 오후에나 답장했다.


이후 울리는 전화를 애써 무시하고 나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며칠간 매일 아침저녁으로 K는 안부인사를 물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우리는 주로 주말을 끼고 데이트를 했기에 일요일에 편지를 보냈고 3일 정도 후 그가 받을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하루 늦은 나흘째 되던 날 

언제나처럼 그에게로부터 카톡이 왔다. 평소와는 다른 내용으로  


'편지 받았고 읽었어. 잠깐 통화 가능해?' 

'이따 퇴근하고 연락할게.' 


편지까지 읽었다면 이제 정말 끝이겠구나

그렇게 그와 다시 한번 헤어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저녁에 K에게 전화를 걸었다.

많이 힘들었던 듯 까실한 목소리 

"왜... 왜... 미리 얘기 안 했어....."

가슴 한 구석이 철렁 내려앉는다.

"어떻게 그걸 얘기해" 


그리고 한동안 다시 정적

근데 수화기 너머로 그의 울음이 들린다.

"난 너라는 사람을 좋아한 거야. 네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상관없이." 

드라마와 같은 한 마디였다.


순간 나도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를 나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언제나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위축되게 하던 그런 두려움을 날려 보내준 사람이었다.


"이번 주말에 올라갈게. 약속잡지 말고, 다른 사람 만나지도 말고."


그렇게 K와는 헤어지기로 한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재결합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을 하게 되었다.

사촌언니와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K를 사촌언니에게 소개하게 되고 

코드가 조금은 잘 맞았던 막냇동생과도 자리를 가졌다. 


장거리연애의 장점은 서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 보니 애틋함이 커진 게 된다.


이 사람이 내 인생에서 조금씩 중요해져 간다. 

이 사람과 함께 행복하고 싶다. 


그렇게 2년을 더 만났고, 나는 철쭉시에 있는 병원에서 자리를 잘 잡은 듯했고 K는 졸업반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K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던 나는 K에게 서울 쪽으로 취업을 요구했고 

K는 본가와 가깝고 학교 근처이기도 한 사과 시 쪽으로 취업을 원했다.


내가 그에게 서울 근무를 요구한 이유 중 하나는 사촌언니의 남편. 나에게는 형부의 해외 근무가 끝나며 다시 귀국하게 된 점.

따라서 언니와 동거 중이던 나는 어딘가 새로운 주거를 정해야 했고,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는 성격이기에 

K와 함께 했으면 했다. 

그리고 2년간의 원거리 연애로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음. 필요로 할 때 즉시 와줄 수 없음.

내가 힘들 때 네가 힘들 때 거리의 한계에서 오는 상대의 부재는 컸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 걸러 하루 우리는 전화로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일이 풀리려면 어떻게 던 풀리나 보다.

내 인생에 막장 드라마 같은 일이 생겼다. 

지금 돌아봐도 정말 막장드라마 그 자체인 거 같다.


철쭉시에서 근무하던 병원에서 나는 실장 겸 대표비서직을 겸하고 있었다.

그 대표가 대표원장의 불륜 상대였다. 

소위 말하는 오피스와이프

나보다 10살 정도 많았던 이 여자는 정말 난년of난 년이었다. 


일찌감치 선으로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는 그 남자와 대차게 이혼하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며 인생 즐기고 사는 여자 

그런 사람이 나의 직속 상사였다.

그리고 문제는 그녀의 정숙하지 못한 사생활을 대표원장이 알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대표를 단속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는지 그녀의 카드와 핸드폰을 정지시켰고, 그녀는 금고안에 있던 현금을 가지고 잠수타버렸다.

그러자 그녀의 비서로 있던 나에게 그녀의 행방에 대해 알고있지 않냐고 심문하거나, 탄원서에 그녀의 문란한 사생활에 대해 증언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어느 날은 잠을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대표원장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다 알고 있지 않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장문의 문자를 보내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 했고 어떻게 했고 어떻게 했는데 그녀는 나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동정심에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본인의 파트너가 두 눈 벌겋게 뜨고 있는 곳에서 대놓고 바람을 피우겠는가

나는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고, 증언을 하지 못하겠다고 한 괘씸죄로 권고사직처리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직장을 잃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김에 사과 시에서 K와 시작을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K에게 사과 시에서의 동거를 제안했다.

당시에는 아직 가족들과 화해하기 전이라 가족들과의 교류도 없었고 

내가 혼자 나와야 하는 거에 대해 걱정하고 있던 K는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나와 동거에 관련해 K의 가장 큰 고민은 본인이 사회 초년생이라 모아놓은 돈이 없는 거였다.

당시 K는 학교와 협약을 맺은 업체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회사 기숙사 (라고 부르지만 컨테이너로 가조립한 보기만 해도 열악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근처 1.5룸이나 2룸 정도를 K는 생각했지만 지방이다 보니 생각보다 아파트의 월세도 매우 저렴했다.

지은 지 4년 된 33평의 방 3화 2의 아파트가 1000/60이라니..

그나마도 젊은 신혼부부가 들어온다고 기특하다며 5만 원을 깎아주셔서 1000/55까지 해준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당시에는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내 몫의 보증금만 간신히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남은 보증금은 K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K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 안에서 보증금을 해결할 수 있는 집으로 갔으면 했다. 

그의 말을 좀 들으면 좋았을 것을 중산층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500/45 하는 투룸이 마땅하지 않아 굳이 부득부득 우겨 1000/55짜리 아파트를 들어가게 되고, K는 약간의 빚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후에 K와의 이별에 있어서 자기는 이 순간에 이별을 이미 한 번 마음먹었노라 했다. 


원룸이나 투룸이 아닌 아파트로 이사하다 보니 또 새로운 문제가 있었는데 기본 옵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그 어느 것도 기본으로 있지 않아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구입을 해야 했다.

둘 다 게임을 하니 컴퓨터책상과 의자, 잠을 잘 수 있는 침구류 등등..


가전제품은 중고가전샵을 이용했고, 가구들은 카드 한도를 늘려서 구입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런 돈을 아낄 수 있는 선택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과거

당장 일할 곳도 없이 그냥 같이 산다는 행복감에 들떠 대책도 없이 내려와 버린 나는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카드를 긁고 있었다. 


K와의 동거는 행복했다.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근처 어학원에 강사로 등록해 출강을 시작했고 K는 성실한 사람이라 열심히 돈을 벌어왔다. 

쉬는 날에는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근처에 있는 보에 꽃을 구경하기도 하고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둘이 뭔가를 어떻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삶은 유지할 수 있었다.

정말 근근이 살아간다는 느낌? 청춘드라마의 옥탑방(은 아니지만)에서 막 시작한 풋풋한 커플의 느낌이 이럴까?


둘의 관계는 괜찮았지만 나의 직장은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당시 사과시에 있는 병원에 출근을 했는데 텃세가 너무 심했다.

"저희가 타지인한테 원래 좀 텃세가 있어요 이해하세요."라고는 했지만

막상 겪어보면 그 텃세라는 게 굉장히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2주 만에 "저는 여기가 맞지 않습니다" 선언을 하고 나와버렸다.


그러고 나서 새롭게 구한 직장이 어학원 강사.

유학 경험도 있고 어릴 때 외국에 살기도 했기에 철쭉시에서부터 외고준비생들을 상대로 과외를 하기로 했었다.

주로 직장출강과 저녁에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원내강의가 나의 업무였고 업무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임금체불 

당시 원장님은 학원을 운영하는 능력이 썩 좋지는 않아 항상 금전난에 시달리곤 했는데 

그렇게 되면 월급의 우선순위는 인기강사>혼자 사는 강사> 결혼한 강사 가 되었다.

당시 어학원의 주 수입원은 OPIC이라는 영어 말하기 시험 준비반이었고, 제2외국어 강사에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었던 나는 임금 지불에서 항상 후순위가 되곤 했었다.


가뜩이나 철쭉시에서 버는 돈의 1/3 정도밖에 못 벌어 항상 스트레스였는데 그나마도 

K에게 내 몫의 생활비를 줘야 할 시기에 임금지급이 늦어지다 보니 나 역시 전달이 늦어지게 되고,

K는 이로 인해 많이 스트레스받아했다. 

나 역시 원장님에게 급여일이 되면 찾아가 사정도 해보고 엄포도 놔보고 이렇게 저렇게 행동했으나 

결국에 "선생님이 좀 이해해 줘요." 라며 내 월급을 미뤄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또 K에게는 그저 미안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무렵 K는 새로운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니 여자로 살거래매 수술은 언제 마칠 건데?"

"네가 수술을 마쳐야 울 집에 데려가 인사를 하던 결혼을 하던 하지." 


그렇다 나에겐 수술이라는 아주 큰 숙제가 남아있었다. 

내가 선택한 쪽과 반대되는 성별의 기관을 제거하는 것.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수술에 대한 공포도 있었다.

우선 당시 가장 큰 건 비용적인 문제 

수술하고 일을 쉬고 뭔가를 하려면 당시 2~3천 정도 되는 비용이 필요했다.

당장 월급도 제 때 못 받고 있는 상황에 빨리 수술을 하라고 재촉하는 그가 야속했다.


"너 내 상황 다 알잖아.. 지금 너한테 돈도 제 때 못줘서 나 미쳐버릴 거 같아 수술할 돈이 어딨어?

수술은 땅 파서 해? 네가 돈 대줄 거야? 아니 빌려주기라도 할래?" 

미안함에 오히려 더 화를 내게 되고 이렇게 되면 착한 K는 

"내가 미안하다. 네가 제일 답답한데 내가 재촉했다." 라며 오히려 내게 미안해했다. 


K와 동거한 지 어느덧 10개월 정도 되어가던 어느 늦은 여름날 나는 K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K는 현재 직장에서 1년이 되었으니 퇴직금이 나오는 상황이었고, 나 역시 매번 임금체불이 되는 직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텃세, 임금체불 등 그냥 그 당시에는 사과시가 꼴도 보기 싫었다.


"우리 서울 쪽으로 갈까?" 

옆자리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K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너 사수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고 있잖아. 지금이면 퇴직금도 나올 거고.

당연히 내가 일할 수 있는 데는 서울에 훨씬 많기도 하고 급여도 여기보다 훨씬 높고 안정적이야."

자신 있게 얘기한 데에는 사실 서울에서 면접을 몇 군데 봤었고 그중 두 군데서 출근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임금은 사과시보다 좋았고 이름 있는 병원이니 웬만해선 임금이 체불될 일도 없을 것이다. 

출근은 현재 지방에서 정리를 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 바로는 어렵다고 했고 1개월 이 내라면 괜찮다고까지 했다. 


그는 당장의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본인의 본가까지 1시간 거리에서 3시간 이상 거리로 늘어나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차라리 우리 다시 장거리 연애를 할까? "

아니.. 그건 싫었다. 

"너 그동안 나 먹여 살린다고 많이 힘들었잖아. 올라가면 한 2개월은 그냥 놀면서 재취업 준비 해. 네가 나 돌봐준 만큼 이번엔 내가 돌볼게." 

아직 월급은 받지도 않았다. 그 병원에서 얼마나 일할 지도 모른다. 

근데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자신 있게 그를 설득해 버렸고, 다음날 그는 3주 뒤로 퇴사일자를 받아왔다. 


때마침 집주인도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다시 이사를 해야 하니 집을 반환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어찌 완벽한 타이밍이지 않은가? 

그 주 목, 금요일에 K는 남아있던 연차를 썼고, 우리는 1박 2일로 서울 근교에 살 집을 찾으러 왔다.

사실 내 마음속에서 어디 살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철쭉시 

서울과도 가깝고 근처에 사촌언니가 있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그곳 

언니와 함께 지냈던 오피스텔에는 언제나 공실이 있었고, 햇볕이 잘 들고 창밖으로 나무가 우거진 그곳으로 우리는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K. 서울에 가면 나 돈도 열심히 모아서 얼른 수술할게. 너네 집에 인사도 가고 우리 얼른 결혼도 하자."

오피스텔 임대 계약서를 쓰고 나오면서 K의 팔에 팔장을 끼며 밝게 말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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