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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06. 2023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한국에 돌아와서 가족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어릴 때부터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는 나에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커밍아웃 아닌 커밍아웃.. 막상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아~ 니가 그래서 좀 다르게 느껴졌던 거구나?"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형식적인 위로를 해주지만 

몇몇은 이 후로 점점 요원해지는게 느껴졌다.


아마도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는 그 무언가의 존재가 

그들의 마음에서도 뭔지 모를 불편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는 남자답게 여자아이는 여자답게를 학습하며 살아왔으니 

이도 저도 아닌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그들에게도 큰 숙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기 이후 내 주변에 남은 친구들은 정말 내가 목숨이라도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이들이 되었다.




내가 인터섹스라는 건 알게 되었지만 정말 큰 숙제가 남아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자' 혹은 '여자' 명확한 구분을 요구한다는 점 

나는 남자로의 삶을 살지 여자로의 삶을 살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외형적으로는 170이 조금 넘는 키. 남자로도 여자로도 살아갈 수 있는 키 

남자로도 여자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얼굴.

하지만 변성이 오지 않아 높은 목소리. 남자로는 보이지 않을 목소리 

크게는 아니지만 압박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약간은 나온 가슴 

잘록한 허리 등은 외형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남자 사회구성원으로의 역할을 학습해 왔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로 인지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외형과, 내가 학습한 성별은 너무나도 정반대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면 나는 무엇이지? 

남자로의 삶을 혹은 여자로의 삶을 꼭 살아야 하나? 

나는 그냥 나인데 이걸 꼭 규정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답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릴 때의 나는 남자라고 불리는 거에 대해 묘한 불쾌감이 있었다.

너는 남자야!라고 가정으로부터 학습을 받아 나는 남자인가 보다고 하지만 

내 현재의 모습은 일반적인 남자가 아니었으니 스스로를 남자로 소개하는 건 참으로 고역이었다.


무엇 하나 결론짓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1년 뒤인 23살.

나는 여자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외형적으로나 내가 끌리는 이성으로 봤을 때 여자로 살아보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당신들의 자식이 갑자기 다른 성으로 살겠다는 결정에 쉽게 동의할 부모는 없고

이해해 주리라 믿었던 자매들조차도 처음에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나쁜 년들.. 내가 갈아준 니들 기저귀가 몇 장이고, 내가 먹여준 니들 분유가 몇 통인데 


그와는 별개로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아왔던 것도 문제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가칭) 포도시에 살아왔는데 

한 아파트에 오래 정착하고 살다 보니 동네 주민들끼리 어느 정도

어느 집에 누가 살고 하는 정도는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곱상하긴 했지만 남자애라고 알고 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여자의 모습으로 다니는 건 동네 아줌마들의 소소한 뒷이야기 안줏거리로 너무나도 좋았고

우리 엄마는 그러한 스트레스를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때로는 엄마가 나를 불러 꼭 그렇게 살아야겠냐고 눈물 섞인 호소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동생이 분에 가득 차 내 방으로 쫓아 들어오며 동네 창피해서 살 수가 없으니

차라리 나가던지 죽던지 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악담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가장 포근한 보금자리가 돼야 할 나의 가족은

가시덤불로 만든 보금자리처럼 나를 아프게 옥죄이고 있었다.


가족과 겪는 문제와는 별개로 사회생활을 생각 외로 너무 쉽게 풀렸다.


외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지 고민해 봤고

우연히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국비지원 교육도 있었기에 전화 상담을 받고, 바로 국비지원 신청을 하고 

그렇게 1개월 조금 넘는 기간을 학원을 다니며 cs교육 등 커리큘럼을 이수하니

너무나도 간단히 나에게 민간 자격증을 하나 발급해 주었다.


자격증이 있으니 이제 병원에 지원을 해봐야지

그냥 될 대로 돼라 라는 마음으로 병원에 이력서를 몇 군데쯤 넣었고

몇 군데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을 받았다.


면접관이 의사였기에 전 인터섹스입니다라고 밝히면 

"아 그렇군요?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어요"

"아 실습 시절 한 번 본 적이 있네요."

등의 생각보다는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의학적인 지식이 있는 곳이어서였을까 취업은 순탄하게 잘 진행되었고 

면접 시에는 여자로 살기로 결정한 거냐 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두 군데에서 출근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당시 외국인 환자들이 많이 있던 명동의 한 병원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인터섹스들이 "나"로 살기보다는

남자일지 여자일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나는 공익운동에 주체자가 될 정도로 적극적이지도 않으며 혁명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분법 되어있는 이 세상을 나로 살아갈 자신도 없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별로 살아가는 건 앞으로의 내 삶이 너무 고달플 거 같기에

그렇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남자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불편감이 많기에

내 육체적인 상황을 보았을 때, 내 성향을 고려했을 때

나에게는 여자라는 옷이 더 잘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나는 여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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