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는 생각보다 잔인했다
비교는 늘 조용히 시작됐다.
누군가 일부러 나를 비교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나는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학교로, 일터로, 다음 계획으로.
나는 그 흐름에서 잠시 비켜나 있었을 뿐인데,
그 ‘잠시’가 점점 영원처럼 느껴졌다.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 말 뒤에는 항상 비교가 따라붙었다.
누군가는 지금도 하루를 꽉 채워 살고 있고,
누군가는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비교는 상황이 아니라 속도를 기준으로 나를 재단했다.
얼마나 빨리 회복하는지, 얼마나 정상으로 돌아오는지,
그 기준 앞에서 나는 늘 늦은 사람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나 자신과의 비교였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선에 올려놓고 계속해서 묻고 있었다.
왜 예전처럼 못 하냐고.
왜 이 정도도 힘드냐고.
왜 아직 여기 있냐고.
그 질문들은 나를 더 나아지게 하지 않았다.
다만 이미 지쳐 있는 나를 한 번 더 밀어붙일 뿐이었다.
비교는 불안을 더 정확하게 만들었다.
막연했던 불안에 이유를 붙여주었다.
‘나는 뒤처졌다’는 이유,
‘나는 멈춰 있다’는 이유.
그 이유들은 불안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불안을 키우는 말들이었다.
SNS를 보다가 괜히 휴대폰을 내려놓은 날도 많았다.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나에게는
넘어야 할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나의 하루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날이 하루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 하루를 설명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때의 나는 회복조차 경쟁처럼 느끼고 있었다.
누가 더 빨리 괜찮아지는지, 누가 먼저 일상으로 돌아오는지.
하지만 회복은 속도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비교가 잔인했던 이유는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쉽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아픈 나를 보지 않고 느린 나만 보게 만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었다.
다만 그 애씀의 형태가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비교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 지워진 자리에서 불안은 더 크게 자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비교를 멀리하려고 했다.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를 해치는 비교 앞에서는
한 발 물러서려고 했다.
비교는 생각보다 잔인했다.
그래서 나는 비교 대신 나의 상태를 묻는 연습이 필요해졌다.
지금의 나는 어디까지 가능한지. 무엇이 힘든지.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지.
그 질문들은 나를 바로 낫게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나를 더 망가뜨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