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속에서 숨는 법
불안은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 속에서 더 커졌다.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았고,
아무도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숨이 가빠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어느 날부터는 나를 안심시키기보다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는 자꾸 나를 숨기게 되었다.
괜찮은 표정을 연습했고, 질문이 오기 전에 대답을 미리 준비했다.
혹시라도 내 상태가 들킬까 봐.
불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조심스러웠다.
팔에 깁스를 한 것도 아니고, 어디가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더 애썼다.
괜찮다는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럴수록 몸은 더 예민해졌다.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오래 붙잡는 것 같을 때,
괜찮냐는 질문이 조금만 길어질 때,
나는 자꾸 숨을 고르게 되었다.
아무 일도 아닌 순간들이 나에게는 사건처럼 남았다.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점점 말수가 줄었다.
이야기에 끼어드는 타이밍을 놓쳤고,
웃어야 할 순간을 자주 지나쳤다.
그게 불안 때문이라는 걸 설명할 수 없어서
그냥 조용한 사람처럼 남아 있었다.
불안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기보다
나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거기 있는 것 같은데 없는 사람처럼.
아무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한 발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상하게도 더 지쳤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온몸이 무거웠다.
사람들 속에서 하루를 버텼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운이 빠져버렸다.
그때의 나는 사람을 싫어하게 된 줄 알았다.
사람들과 있는 시간이 점점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이 싫었던 게 아니라
불안한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속에서 숨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질문을 받지 않게, 괜찮은 사람처럼.
내 상태가 문제가 되지 않도록 미리 나를 작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 방식은 나를 안전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다만 조금 더 오래 버티게 해 주었을 뿐이다.
버티는 동안 나는 점점 내가 어떤 상태인지보다
어떻게 보일지를 더 신경 쓰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숨고, 혼자 있을 때는 무너졌다.
그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버티는 일이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불안은 특별한 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배경처럼 늘 함께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숨는 방식으로는 오래 살 수 없다는 걸.
계속 괜찮은 척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나 자신을
놓치게 될 것 같다는 예감.
하지만 아직은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도움을 청하는 법도, 솔직해지는 법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혼자 견디는 것이 내 몫이라고
너무 오래 믿어왔기 때문이다.
불안은 이미 내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나는 그것을 혼자서 견디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했고,
이 상태를 설명하기에는 말이 너무 부족했다.
그저 이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이렇게는 더 버틸 수 없겠다는
예감이 시작되고 있었다.
1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