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있는데 왜 더 불안해질까
해야 할 일이 없고, 당장 급한 일정도 없는데
마음은 오히려 더 바빠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나를 가볍게 만들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쉬고 있다는 말은 내가 나를 변호하기 위해 꺼내는 말 같았다.
지금은 회복 중이라고, 지금은 멈춰도 된다고.
하지만 그 말은 마음 깊은 곳까지 닿지 못했다.
시간이 많아질수록 생각도 늘어났다.
생각은 쉬는 법을 몰랐다.
하루 종일 ‘이렇게 있어도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자꾸 쉼을 조건부로 생각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를
증명해야만 쉬어도 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쉬는 동안에도 마음은 쉬지 못했다.
지금 이 시간이 정말로 필요한지, 괜히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점검했다.
쉬고 있는데도 불안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쉼을 허락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아직 쉴 자격이 없다고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주변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다음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 안에서 나는 ‘쉬는 중’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자꾸만 나를 작게 만들었다.
쉬는 시간은 비교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바쁘게 하루를 채우고, 누군가는 성과를 쌓고 있었다.
그 장면들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쉼을 회복의 과정으로 보지 못했다.
쉼은 잠깐 허락된 예외였고, 언제든 끝나야 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쉬고 있는 동안에도 끝을 준비하느라 더 불안해졌다.
몸은 분명히 쉬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마음은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재촉했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자주 갈라졌다.
쉬고 있는데도 숨이 가빠지는 날이 있었고, 아무 일도 없는데 가슴이 조여 오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쉬고 있는데 왜 이러지’라는 질문이 불안을 한 번 더 키웠다.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됐다.
쉬는 것과 회복은 같은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멈춘다고 해서 곧바로 나아지는 건 아니라는 걸.
쉬고 있는 시간이 불안을 드러내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를 처음엔 겁먹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불안이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쉬고 있는데 더 불안해진다는 건 어쩌면 그동안 너무 오래 쉼 없이 버텨왔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긴장이 이제야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아직 이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쉬는 중에도 불안한 내가 이상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조금 하게 되었다.
쉬고 있는데 왜 더 불안해질까.
그 질문은 나를 몰아붙이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내 상태를 묻는 질문이어야 했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