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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백송자 Mar 17. 2023

명자

내 인생의 노을길이 그의 노래로 붉게 물든다

노랫말이 한 편의 시詩다. 그때 그 시절을 그린 풍경이 악보에 머물지 않고 구성진 노래 따라 굴절 없이 펼쳐진다. 덧칠하지 않은 수채화처럼 맑다. 수십 년간 봉인된 저마다의 아픔이 그리움으로 새겨진다. 메말랐던 가슴이 촉촉해지며 ‘명자’노래를 수시로 흥얼거린다. 자야 자야 명자야…


 미스터 트롯 미美 이찬원, 스물다섯 살 청년이 불렀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는 노래라며 신청한 팬을 위해 선곡하였다고. 첫 소절에서 이미 그만의 노래가 되었다. 풍부한 감성으로, 절제된 슬픔으로, 높은 가창력으로 뿜어내는 노래 따라 기억 저편에 있던 수많은 부모님이 시청자의 눈에 아릿하게 떠올랐다. 자식 앞에서는 사랑으로만 서 있던 부모님, 이제 자식에게는 그리움으로만 가슴에 남은 부모님, 각자의 부모님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어린 시절의 꼬마가 된다. 돌아보면 지난날은 모든 게 빈약하여도 불편이 없었다. 주어진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불평하지 않았다. 누가 잘 살고 못사는지 대충은 알았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멀건 수제비 한 그릇으로도 쌀밥 못지않은 포만감이 있었고 군데군데 덧댄 옷을 입고 다녀도 부끄러움을 몰랐다. 동네 공터에서 해질녘까지 놀다보면 ‘자야 자야’하며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있어 언제나 마음은 따뜻했다. 


 하루 24시간 중에 해거름 녘이 나는 제일 좋다. 이 시각 즈음이면 어릴 적에 집집마다 굴뚝엔 연기가 났다. 외양간의 가마솥에는 여물이 푹 익어가고 부엌 밥상에는 어머니의 손맛이 차려졌다. 공터에서 놀던 아이도, 학교에서 공부하던 언니오빠들도 집으로 돌아오고 하루의 고단함이 풀어지는 시각이다. 


 지금은 낮에도 전등을 켜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해질녘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낮과 저녁의 경계가 없는 탓일 게다. 그래도 오랜 습관이 몸에 밴 영향인지 어림잡아 해질녘이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먼 산을 바라보기가 일쑤다. 노을 저편에 쪽진 머리를 한 어머니가, 흙 묻은 바지를 수건으로 툴 툴 털어내던 아버지가‘자야 자야’ 하며 부르는 것 같아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곤 한다. 


 ‘명자’ 이 노래에 빠져든 지 한참이다. 수시로 듣는다. 귀마저도 질리지 않은지 노래가 늘 청아하다. 노랫말은 더없이 슬픈데 마음은 더더욱 온화해진다. 노래와 마음이 하나 된다. 물아일체. 이는 그저 노래가 좋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그가 좋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리라. 


 한과 흥이 공존하는 노래, 트롯을 늘그막에 내가 좋아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음치인 내가 더구나 청음도 발달되지 않았던 나 자신이 그가 부르는 노래마다 가슴 떨고 있으니 스스로도 놀라울 따름이다. 그가 어느새 내 삶의 길 한복판으로 불쑥 들어와 나를 이끈다. 나는 자주자주 환호하며 그를 따라 길을 간다. 처음 가보는 길이지만, 햇빛과 바람이 늘 동행해준다. 이제 내 인생의 노을 길이 그의 노래로 붉게 물든다. 


 지는 해가 아름다운 건 노을이 주는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뜨거웠던 삶의 열정을 식히며 마음이 허기지지 않는 시간으로 남은 생을 채우며 살아가리라. 


 ‘자야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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