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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백송자 Mar 17. 2023

혼불의 고향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 혼불을 다시 읽는다

마지막 장이다. 끝을 고하는 마침표가 없는 책장을 덮지 못한 채 두 손으로 글자들을 어루만진다. 작가의 혼이 두 손으로 전해져 가슴까지 올라온다. 상기된 얼굴이 되어 여전히 나는 미완성의 소설 혼불, 뒷이야기들이 자못 궁금해진다. 강모와 강태는 독립운동을 펼칠까. 효원이 가마에서 내릴 때 보았던 종가의 용마루 위로 웅숭깊은 보름달은 뜰까. 거멍굴 옹구네 집에서 춘복의 씨를 태중에 품고 몸을 돌돌 말아 갇혀 있는 강실이는 홀로서기를 할까. 혼불 책을 감히 손에서 놓지 못하고 혼불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친구들이 낭만과 호기심을 온몸에 걸치고 서대전역에서 모였다. 그 옛날, 학교 다닐 적에 기차하면 삶은 계란이 아니었던가. 기차를 타고 좌석에 앉자마자 풀어놓은 간식거리에 계란이 수북했다. 너도나도 계란을 집에서 구워온 것이다. 우리는 교복 입고 단발머리의 학생으로 돌아간 듯 입을 막고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간간이 남도의 바깥 풍경에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친구의 얼굴에서 내 모습을 보며 남원역에 도착했다. 지나는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남도사투리는 태생이 경상도인 우리에게도 금방 떠온 숭늉처럼 구수했다. 


  소설 혼불의 주요 공간적 배경인 종가마을 뒤편에 마련된 혼불 문학관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우리를 뜨악해 했다. 내일모레면 환갑의 나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눈매에 서리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청암부인의 기상이 돋보이는 듯 지붕에 청기와를 얹은 문학관은 노적봉과 벼슬봉을 품에 안고 있다. 청호 저수지 주변 솟대에는 새들이 깃들고 있다. 영험하다는 조개 바위가 묻혀있을 위치를 가늠하여 나는 두 손을 마주 쥐어 가슴으로 끌어올리며 풍악산의 울창한 송림을 바라보았다. 봄 햇살에 물빛이 반짝였다.


 문학관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작가 최명희의 실물 크기 사진이 선한 미소를 흠뻑 머금고 오는 이를 일일이 반겼다. 눈을 맞추어 인사하고 돌아서면 맨 앞 진열장에서 혼불 원고와 만년필도 볼 수 있다. 조금 전에 글을 쓰다 말고 기지개를 켜며 잠시 자리를 비운 뒤의 장면 같은 집필실, 그녀의 체취가 여전히 배어 나오는 듯 온기를 느꼈다. 신발에 묻은 흙을 마당에서부터 툭툭 털며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잉크를 채운 만년필로 글을 쓰는 작가의 생생한 모습을 곧 만날 것 같아 도무지 발을 뗄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소설 속 이야기들이 이곳저곳에서 읽히고 있다.


 디오라마, 모형과 인형으로 각각의 장면들을 재현해놓고 그 앞에 서면 스피커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오도록 장치한 것이다. 강모와 효원의 결혼식, 강모와 강실이의 소꿉놀이, 청암부인의 장례식 등이 정교한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강모와 강실이가 살구나무 아래 앉아서 소꿉놀이하는 디오라마에서 나는 귀를 모았다. 


 혼불은 작품에서는 매안 이 씨 종가댁 이야기이지만 배경은 작가 최명희의 삭령 최 씨 일가 이야기다. 현재에도 소설 속에서 효원이 몸종으로 데리고 왔던 콩심이는, 아흔의 나이를 넘기며 노봉마을에 살고 있다고 겨우살이 차를 권하며 문화해설사는 말을 이었다. 궁금했던 뒷이야기를 물었다. “강실이는 어찌 되었나요?” 아이 셋을 낳아 키우다가 오래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때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며칠 전부터 이미 예약된 해설이라며 부랴부랴 자리를 뜨는 문화해설사를 따라갈까 망설이다 멈추었다. 조만간 다시 찾으리라. 꿈의 꽃심을 지닌 땅, 매안마을이자 노봉마을인 최 씨 종가 마을과 서도 역에도 가보리라.


 혼불의 고향, 남원에서 불어오는 대숲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다.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라는 최명희 작가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바늘땀 뜨듯이 나는 내 인생의 밭에 옮겨 심는다.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 혼불을 다시 읽는다. 두 번째다. 최명희 작가가 17년 동안 4만 6,000여 장이나 되는 원고지에 풀어낸 이야기를 이번에는 천천히 소리 내어 읽으려고 한다. 혼불을 읽으면 판소리의 가락이 전해진다. 나는 휘모리장단이 아니라 중모리, 진양조장단으로 읽는다. 


 봄볕이 창가를 건너와 방안까지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성큼 걸어온 오늘, 나는 혼불의 고향 품에 안겨 잠시 선잠에 들고 싶다. 꿈속에서 혼불의 뒷이야기를 작가 옆에 바투 앉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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