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향을 입안에 가득 물었는데 온몸은 고향의 그리움으로 불타오른다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제 몸 하나 허공에다 붙들지 못하고 곳곳에 내린다. 내 마음에 내린 눈은 엄마가 어릴 적 해주던 무밥으로 녹는다. 눈과 무밥의 색깔이 닮아서일까. 겨울나무 위에 눈꽃이 목화처럼 소복이 피어나면, 호롱불 아래 무를 채 써는 엄마 모습이 그려진다. 아릿한 풍경이다.
엄마는 윗목에서 무를 채 썰고 나는 엄마 옆에 바투 앉았다. 엄마가 초록빛 무를 잘라주면 아삭아삭 먹는 소리는 휘모리장단으로 음표를 그렸다. 한 소쿠리 수북이 담긴 무채는 마치 앞산의 봉우리처럼 봉긋했다.
난 단지 졸려서 눈을 감았을 뿐인데 눈을 떠보면 아침이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아버지가 먼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는 발걸음 소리에 뒤이어 엄마의 부엌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릴 적 시골의 아침은 이렇게 소리로 시작되었다.
물두멍에서 물 퍼는 소리, 함지박 문지르는 소리, 불 지피는 소리까지 들리면 알싸한 연기가 봉창으로 들어왔다. 밤새 싱겅해진 아랫목은 다시 따끈해지고 나는 단잠에 곤히 빠졌다.
가마솥에 쌀이나 보리쌀을 조금 깔고 밤새 채 썬 무를 얹어 엄마는 밥을 짓는다. 한줌 곡물로 지은 밥물이 부르르 넘치면 솥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도 아련하게 그리움으로 울리는 소리다. 배고팠던 시절, 이 소리만 들으면 얼굴빛이 환해지곤 하였다. 한 끼를 거르지 않을 수 있다는 넉넉한 느낌이었다. 이불을 걷고 방 한가운데 두레상을 편다. 두레상에 그려지는 손자국에 겨울 햇살이 창호지 문을 딛고 넘어와 슬며시 자리 잡고, 부엌과 방 사이로 난 작은 봉창으로 그릇과 수저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김장김치와 간장만 있는 반찬이지만, 무밥이 수북이 담긴 일곱 식구의 밥그릇으로 밥상은 풍성하다. 그리고 따듯하다. 밥그릇에서 손으로 전해지던 그 온기는 세월을 건너오고도 식지 않고 눈이 오는 날이면 가슴으로 올라온다.
나는 무밥이 싫다며 밥을 안 먹는다고 떼를 써는 날이 많았다. 엄마와 아버지께서 당신들의 밥그릇에 꽃잎처럼 흩날리는 밥알들을 꺼내주었다. 내 밥그릇에 드디어 꽃숭어리가 피어나듯 밥알이 많아져 나는 그릇에 코를 박고 밥 냄새를 맡았다. 들큼한 무 냄새보다 구수한 쌀이나 보리쌀 냄새가 좋았다. 한 수저 한 수저 밥을 먹다보면 어느새 밥알은 보이지 않고 물컹한 무만 밥그릇에 남아 있었다. 무에 붙은 밥알을 손으로 집어먹기도 했다. 밥알만으로는 허기를 채우지 못한 나는 으깨진 무를 입안에 틀어넣고 씹지도 않은 채 목울대로 넘겼다. 순간 캑캑거렸다. 한 사발의 물을 들이켜고서야 진정되었고 그렇게 겨우내 질리도록 무밥을 먹었다.
바람이 차고 추운 날에는 엄마가 해주던 무밥 위에 파 송송 썰고 참기름 한 방울 톡 떨어트려 만든 양념간장을 얹어 볼이 미어지도록 쓱쓱 비벼 먹고 싶다. 침이 저절로 넘어간다. 단내가 난다. 입안은 무밥에 딸려온 고향의 향기로 달달하고 그 향기로움이 달아날까 입을 앙당그려 다문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전히 눈 세상이다.
무밥을 짓는다. 무채는 가늘게 썰어야하는데 잘 되지를 않는다. 채칼은 옆에 있지만, 고집스럽게 날이 선 칼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채를 썬다. 칼질 소리가 경쾌하지 않다. 두껍게 썬 무채는 따로 제쳐주고 그나마 도톰한 듯 고운 채만 골라 불려놓은 쌀 위에 얌전히 놓는다. 밥솥의 전원을 켜고 나는 간장을 만든다. 식탁이 아닌 두레상을 펴고 수저를 식구 수대로 놓는다. 압력밥솥의 치이익, 김빠지는 소리가 들려도 몰려드는 사람이 없다.
‘밥 묵꾸로 빨리 나와’
여러 번 외치자 그제야 두레상에 앉는 식구들. 밥 생각이 없는지 남편은 지나간 TV 야구 중계에 빠지고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고개를 깊숙이 묻는다. 숟가락조차 들지 않던 아이들은 이내 곧 주방으로 가서 냄비에 물을 붓는다. 라면 봉지 뜯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은 무밥 위에 간장을 넣고는 비빔밥 비비듯 숟가락을 치대니 무는 짓이겨져 죽이 된다. 나 혼자만 무가 엉클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비벼 무밥을 먹는다. 무향을 입안에 가득 물었는데 온몸은 고향의 그리움으로 불타오른다.
눈발이 또 날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