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낡음을 동반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곳곳을 헤집는다
허기진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빈자리를 발견하지 못한 노교수는 난감해한다. 그때 혼자 앉아 밥을 먹던 학생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고는 다른 테이블로 옮긴다. 학생은 노교수를 알아본 걸까.
이름만 교직원 식당이지 이용객은 주로 학생들이다. 얼큰한 해물 순두부를 맵고 뜨겁다며 후후 불어가며 식사하는 노교수는 연신 땀을 훔친다. 아주 오래전 강의실에서 엄지와 검지에 늘 분필가루가 묻어있던 손은 숟가락조차도 힘에 겨운지 떨린다. 세월은 낡음을 동반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곳곳을 헤집는다.
몸짓마다 각이 높이 서던 노교수는 이제 휘어진 곡선으로 무게중심이 아래로 축 쳐져 있다. 포구 한쪽에 방치된 폐선처럼 보인다. 작은 충격에도 몸체가 흔들리고 부서질 것만 같다. 하지만 안부를 여쭙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엔진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윤활유를 제때 칠하지 않아 다소 덜커덩거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물만 들어오면 뱃고동 소리를 내며 망망대해로 나갈 기세다. 건강을 챙기는 것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세계에 더 열중하는 분이다. 비가 오면 어깨가 젖을까 걱정하기에 앞서 또르르, 빗방울 떨어지는 길을 따라가며 상념에 빠진다. 겉은 낡고 색이 희끄무레하고 볼품없다 하여도 속은 여전히 꽉 차 있다. 오히려 단단해져 부서지지 않을 정도다.
첫 만남은 대학 일학년 때다. 시인은 교양필수 과목으로 대학국어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지적인 낭만을 강조하였다. 그때는 한참 민주화의 열기로 대학은 뒤숭숭했고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렇게 흘러간 시절이었다. 혼란한 시절에 시인은 순수문학에 열변을 토하였다. 강의실은 학생들로 꽉 차는 날이 많았고 문학을 통해 젊음과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곧은 자세로 강의를 하던 시인을 그 후로는 대면하지 못했다. 나는 자연과학을 전공하였기에 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껏해야 대학신문 지면에서 시인을 보았을 뿐이다. 졸업한 후로는 시인의 이름조차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우연히 다시 만났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였다. 문예창작 저녁 반 수업에서 시인은 녹슬지 않은 강의를 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티타임에 말씀을 드렸다. 대학 일학년 때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고. 수많은 학생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함을 못내 미안해하며 글쓰기를 위한 여러 가지 팁을 주었다. 아직도 대학 강단에 서서 시의 이론과 창작을 가르치는 열정에 난 놀라웠다. 시인의 가슴에는 도서관의 책들이 고스란히 쟁여져 있었다. 말씀 하나하나가 어느 시의 시어로 쓰였을 정도로 살아있는 말이었다. 언어를 구사하는 범위가 넓고도 깊었다.
시보다는 수필에 관심이 많은 나는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한 번쯤은 찾아뵙고 문학 이야기를 실컷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 줄곧 하였다. 오래 갈망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였던가. 만날 기회가 왔다. 대표 시를 추천받고 싶은 자리였다. 내가 속한 시낭송 단체에서 ‘대전의 시인, 꽃심을 품다’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최근 발간한 시집에서 세 편을 골랐다. 대표 시로 손색이 없겠냐고 여쭈었더니 마음이 서로 통하였다며 흡족해하였다. 감히 집우執友를 떠올렸다.
최근 끝의 시간을 준비하면서 쓴 작품이 많다. 삶과 죽음을 사유하는 고뇌가 시의 행간마다 돌올하니 박혀 가슴을 찌른다. 누구나 늙으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돌아가야 하는 길이 있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미리 연습해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도 아니다.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한 개가 사라진다, 는 말이 있다. 그나마 대학 도서관에는 시인이 기증한 책과 자료들로 채운 코너가 마련되어 훗날에도 그의 열정은 전해지리라. 현재 삶이 잉걸불은 아니어도 아직은 꺼지지 않는 잔불이다. 불씨는 여전히 시인을 뜨겁게 달구는 듯하다.
점심을 같이 하고 싶다는 제안에 시인은 학교 구내식당을 고집했다. 심지어 지갑까지 열려고 하였다. 복잡한 식당을 나오면서 제자의 팔에 의지하여 발걸음을 뗀다. 지팡이를 왜 안 가져왔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대들이 나의 지팡이오, 라며 웃으신다. 제자들에게 아직은 건장함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었을까. 몇 발짝 떼고 나서는 벽에 기대어 쉬기를 반복한다. 그리 길지 않은 거리에서 간간이 만난 젊은 교수들은 시인 앞에서 깊숙이 인사를 한다. 시인의 얼굴이 일순간 상기된다. 지난날 이들과 쌓은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눈치다. 이런 기대와는 달리 쌩하고 급히 가버리는 젊은 교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흔들린다. 호흡마저도 균형을 잃은 듯 거칠어지며 칼칼한 목을 헛기침으로 다독인다. 어렵사리 명예교수실로 들어서고 나서야 안정을 찾는 시인은 소파에 몸을 구겨 넣는다.
낡은 소파에는 희끄무레한 자국이 선명하다. 사람의 온기와 책의 향기 대신에 꿉꿉한 냄새가 구석구석 흩어져 있다. 노교수들의 열정만으로는 좁은 연구실을 메울 수는 없었나 보다. 너른 책상에 놓인 명패 대신 가로세로 일 미터도 되지 못한 수납공간에 깨알만 한 글씨로 시인의 이름 석 자가 붙어 있을 따름이다. 이것만이 오롯이 시인의 공간이다. 최근에 발간한 시집을 꺼내어 내게 선물로 주신다. 저서 친필 사인을 하는 손끝은 비록 떨리지만, 누르는 글자 획마다 여전히 강한 힘이 그어진다. 아직은 소멸하지 않는 에너지로 이 세상에서 끝의 시간을 잘 갈무리 하면 좋겠다.
지는 햇살을 등에 지고 제자들을 배웅하는 해맑은 미소가 후미진 건물 복도에 오래도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