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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백송자 Mar 17. 2023

수필, 나의 나무

비우고도 튼실한 나무로 잠잠하니 서 있고 싶다

잔잔하다. 햇빛을 튕기는 잎사귀 사이로 바람이 물결을 일으킨다. 노랗게 물든 물이 찰랑인다. 손을 흠뻑 적시자 손끝에 물든 금빛이 가슴까지 올라온다.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물때가 벗겨진다. 잘 익은 가을볕 한 줌에 나를 온전히 맡긴다. 내 몸이 기지개를 켜며 고른 숨결을 연신 내보낸다. 마음에도 부드러운 결이 솟는다.


 나무를 두 팔로 감싼다. 내 마음을 읽는다는 듯 나무는 잎 하나를 툭 떨군다. 구멍이 숭숭 나 있다. 나뭇잎들은 살아있는 동안은 가까이 있어도 서로 만나지 못한다. 생을 털고 낙엽 되어 땅으로 내려와야 함께 따듯한 정을 나눈다. 그 잎을 주워 낙엽들 무더기에 살포시 놓아준다. 서로 어깨를 기대며 지내다 보면 봄날에 새순을 밀어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도시의 뿌연 어둠을 밀어내고 그믐달이 아파트 옥상으로 보일 듯 말 듯 지나간다. 


 다음날이다. 어제 내가 섰던 그 자리에는 포대 세 개가 기우듬히 누워 있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무싯날의 아침 일상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빗질하는 경비원의 동작이 클 뿐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잘 여문 가을 속에서 사색을 오랫동안 하고 싶었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지만, 마음에 담았던 가을은 다 털렸다. 허탈함이 명치끝으로 몰린다. 가을은 소멸이고 쇠락이라 했는가. 낙엽수들은 가을이 되면 자신을 다 털어버리고 나신裸身으로 존재한다. 몸을 비운 채 겨울을 이겨낸다. 봄이 오면 물오르는 가지에서 연둣빛 새순이 돋는다. 상록수는 또 어떠한가. 이들은 사시사철 푸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촘촘히 들여다보면 나무는 수명을 다한 잎을 상시 떨구며 새로운 잎을 출산한다. 털어야 새 생명을 얻는다.


 처음 글을 쓰면서 나는 털지 못했다. 초고를 완성해놓고 퇴고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 글에 들어와 자리 잡은 글자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한 자 한 자가 다 귀하게만 보였다. 차마 내칠 수 없었다. 글자들은 글에서 자리가 비좁다고 아우성을 쳐도 그 외침을 외면하며 고개 돌렸다. 심지어 가만히 있다 보면 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까지 주장하며 입막음했다. 


 낙엽수는 일 년에 한 번, 상록수는 항시 잎을 털면서 한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 오래도록 읽히는 명수필을 보면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담백하다. 내 글은 쓸데없이 많은 수식어로 여백이 부족하여 답답하다. 그러면서도 나무 몸통을 발로 툭툭 치고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은행잎을 터는 경비원이 내 주변에 있을까 봐 나는 몸을 잔뜩 웅크린다. 옹색한 내 글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다. 은행나무를 보며 나는 타인에 의하든 스스로든 털어야 진정한 글이 된다는 것을 배운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면서 상처 난 자리를 늦가을 햇살에 말린다. 

 

 잎은 거의 다 털렸지만, 은행나무는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있다. 한 해 동안 잎을 품고 있었던 기억, 이것으로 내년에는 더 멋진 가을 풍경을 우리에게 자랑하듯 뽐내리라 본다. 나도 털기를 함으로써 이번 글에서는 비록 내쳐졌어도 다음 글에서는 사랑받을 몸으로 태어날 글자들을 마음에 새긴다. 이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글에서 거름으로 숙성되어 잎이 되고 줄기가 되리라. 허접스러운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 거야말로 털기, 퇴고다. 글도 호흡하며 성장한다. 


 나무는 잎뿐만 아니라 줄기와 뿌리를 통해 호흡한다. 나무의 고요한 숨결에 동물들이 등을 기대며 다리를 펴고 휴식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색색거리는 거친 문장이 아닌 들숨과 날숨이 고른 글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수필이라는 이름을 단 나무다. 아직은 뿌리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한 묘목에 불과하다. 더구나 묵정밭이다. 햇볕과 바람이 수시로 드나드는 비옥한 밭은 결코 아니다. 수시로 정성을 다하여 돌을 골라내고 풀을 뽑고 포슬포슬한 흙을 만들어 북을 주며 물을 뿌리며 퇴비를 얹는다. 가녀린 나무에도 가지가 생기고 잎이 돋는다.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어쩌다 들리면 흠칫 놀라기도 한다. 벌과 나비의 날갯짓에 온몸이 전율한다. 꽃 진 자리에 열매 한 두 개쯤은 매달고 또 익어 간다. 씨는 새 생명의 탄생으로 거듭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허기를 채우기도 한다. 결국은 자연의 한 귀퉁이로 돌아가는 것, 비움이다. 


 비우고도 튼실한 나무로 나는 잠잠하니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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