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세상으로 나가는 지팡이 하나쯤은 마음 속에 품고
막대기로 사립문을 더듬는 소리가 난다. 당고모다. 남녀노소로부터 봉사라고 마구 놀림을 받던 분이다. 우물가에서 혼자 소꿉놀이를 하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가 이내 곧 몸을 수그린다. 발뒤꿈치를 들고 구부린 자세로 부엌 문턱을 넘는다. 늘 궁금했던 고모의 눈을 부엌문 사이로 훔쳐본다. 감은 눈을 연신 깜빡거린다. 세상에 대한 경계의 떨림이다. 막대기에 의지한 팔이 기우뚱거리기도 한다. 막대기는 부지깽이로도 쓸 수 없을 만큼 볼품이 없다.
고모는 익숙한 몸짓으로 마당을 지나 토방을 올라와 마루에 걸터앉으신다. 나는 우물가에서 부엌으로 자리를 일찌감치 옮긴다. 귀가 밝은 고모는 집안에 사람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나라는 것까지 다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그 후로도 시골집에서 나는 지팡이 소리를 혼자서, 때로는 식구들과 함께 자주 듣곤 하였다.
집은 동네 어귀에 있는 연못을 지나 삼거리에 있었다. 단칸방 초가집이다. 낡은 가마니 한 장으로 골목과 집의 경계를 만들었다. 사립문이며 부엌문이 된 가마니를 한 손으로 걷어 올리면 소박하다 못해 궁핍한 생활상이 부끄러운 듯 드러난다. 반질반질한 우리 집 가마솥과는 다르게 흙물 칠한 부뚜막에 걸쳐져 있는 솥은 녹이 슬어 고물장수가 탐을 내 당장 달려올 듯하다. 물기 마른 밥그릇과 수저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다 지친 듯 함지박에 바짝 엎드려 몸을 낮춘다. 몽당빗자루가 발끝에 걸린다. 한쪽 귀퉁이에는 생솔가지가 섞인 땔감이 놓여 있다. 방안의 한기를 어린 나이에도 가늠할 정도다.
어머니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홍두깨로 밀어 만든 국수 한 그릇을 고모 집에 가져다 드리라고 했다. 살금살금 몸을 움직이며 심부름 온 목적을 마치고 재빠르게 돌아서려는 찰나에 문이 열렸다. 문고리 하나로 세상일을 걸어 잠그고도 불안하여 모지랑이 숟가락으로 봉쇄했던 방문이다. 문은 삐거덕 소리를 냈다. 익숙하지 않은 방안의 기운을 등 뒤에 매달고 나는 냅다 뛰었다. 헉헉, 골목길 모퉁이를 돌자마자 허리를 굽혀 가슴을 쓸어내리기를 반복했다. 집을 나설 때는 국수가 쏟아지지 않도록 천천히 걸어서 갔지만 돌아올 때는 힘껏 달렸다.
고모는 선천적 장애는 아니었다. 딸이 귀했던 집안에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고명딸이었다. 어느 해 두어 번 경기하고 까무러치면서 시력을 잃었다. 고운 얼굴로 시집을 갔으나 아이 하나 얻지 못하고 옷 보따리를 옆 꾸리에 끼고 그 먼 길을 더듬더듬 용케 돌아왔다. 혼자서 세상과 담을 높이 쌓으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만은 담을 허물었다. 고모와 입 맞추기를 하면서 까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야트막한 담장을 넘었다. 지팡이 소리가 들리면 포대기를 끌고 나와 식구들보다 먼저 고모를 반기었던 나. 고모는 나를 포대기로 두르고 어쩌면 바깥세상을 한 번도 구경 못 한 배춧속처럼 깨끗하고 밝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고모의 등에 자주 업혀 세상 구경을 했던 나는 어른이 되어 고향 집 골목에 섰다. 낡은 집과 새집이 엇박자다. 모퉁이를 돌자 ‘아가 아가, 개얀냐, 천천히 가도 늦지 않는겨.’ 귀에 쟁쟁하다. 초등학교 삼사 학년 정도 되었을 것이다. 내가 왜 뛰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골목을 질주하였다. 모퉁이를 돌면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렸다. 그때 지팡이를 짚고 오던 고모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고모는 땅바닥에, 나는 고모의 가슴팍으로 넘어졌다. 그 와중에 더듬더듬 내 손을 겨우 찾아 붙들며 고모가 혼잣말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 말은 죽비가 되어 잠자는 나를 깨울 때가 많다. 앞을 못 보는 고모를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유일한 지팡이가 나무막대기였다면, 눈을 뜨고도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를 세상으로 이끄는 지팡이는 고모의 말이다. 나는 말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처음부터 깨우친 것은 결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다. 빨리 가고자 서두르면서 놓치는 것보다 천천히 걸으면서 얻는 여유가 더 값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더 빨리 가고 싶다는 욕심으로 남의 밥그릇을 빼앗거나 심지어 그들의 밥상을 엎어버린 적은 없는지 돌아본다. 은연중에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핍박하지는 않았는가.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반칙을 일삼으면서도 선의의 경쟁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끊임없이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당시 철딱서니 없던 아이는 고모의 가슴을 매몰차게 밀어내며 흙먼지를 털고 거뜬히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모는 머리에 피가 나서 된장으로 지혈하였다. 앞을 보지 못하여 글자 하나 깨치지 못한 고모의 짧은 그 말은 내 삶의 지팡이가 되었다.
사는 것은 외관상으로는 달리 보일지 몰라도 누구나 세상으로 나가는 지팡이 하나쯤은 마음속에 품고 살 것이다. 그 지팡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발꿈치를 따라간다. 인생의 길라잡이다.
딱, 딱, 딱. 지팡이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세상 속으로 두 귀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