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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백송자 Dec 09. 2023

여백의 미

백제권 50년 노포 맛집 투어(공주, 부여)

 대전역 동광장에서부터 만남은 설렘으로 통통 튄다. 깊어진 세월의 주름살  사이로 흐린 가을볕이 슬며시 내려온다. 이른  아침부터 먼 곳에서 달려온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거저 좋다. 더구나 이동수단이  28인승 리무진 버스라니 여행의 결이 벌써 고와진다. 간식으로 받은 성심당  빵에는 달달함과 고소함 그리고 부추의 향긋함이 전통이라는 자부심으로 가 득하다. 대전에서 공주로 이동하는 길에는 온통 가을이 익어간다.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려 하고, 이상보의 수필을 되뇌며  속세의 문에 빗장을 걸고 일주문을 넘는다. 산문에 들어서고는 가급적 묵언 이다. 갑사 창건 1603년 개산대제 법요식이 소담하면서도 웅장하게 추秋 갑사의 단풍잎 사이사이까지 울려 퍼진다. 천년의 시간이 경내를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준다.  

추秋갑사

 갑사를 뒤로하고 내려오던 길에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의 은행나무 터널이  시선을 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어렵사리 정차하 여 찰칵, 사진에 담는다. 은행잎 하나 주워 책갈피에 꽂아두던 단발머리 여 학생이 기억의 저편에서 헤살거린다. 배꼽시계는 째깍째깍, 눈치 없이 밥  달라고 울어댄다.  


 공주시 월송동 소서노 다솜차반에서 온조왕의 어머니 같은 여자가 손수 차 린 만두전골 한 냄비에는 담백함과 정성이 보글보글 끓는다. 노포 맛집의  내공은 가히 남다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옥에서 가을 정취를 눈으 로 보며 먹는 맛난 음식은 황홀함이다. 정갈한 음식 이야기를 입 안 가득  물고 또 물어도 지루하지 않고 창문 너머에는 가을 소리 왁자하다.  

 

 두둑해진 배 두드리며 공산성에 올라 문화해설사의 이야기에 귀를 모은다. 학교 밖의 역사 교실이다. 백제의 도읍지 웅진과 교육의 도시 공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온몸으로 꾹꾹 눌러 담는다. 웅진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이냐 는 질문에 대다수가 웅진 코웨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단다. 무령왕릉, 공산성  , 곰나루 등 많은데…. 

공산성의 가을이 익어간

 가을 빗속을 뚫고 찾은 곳은 공주시 소학동 산처럼 힐링센터이다. 강희자  원장님과 함께하는 힐링 체험프로그램은 뜻밖의 선물이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나를 깨우는 운동부터 다도를 통한 힐링의 의미를 유쾌함으로 풀어내 고 여러 차주가 우려낸 녹차를 담은 찻잔에는 감사함이 일렁인다. 나를 내 세우기보다 나를 내려놓는 여백의 미를 다시금 생각하며 녹차 향에 온몸을  맡긴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저녁밥이 어느새 궁금해진다. 

산처럼 힐링센터에 놓인 정물화


 공주시 금성동 70년 전통의 새이학가든에서의 공주국밥 정식은 화려한 만 찬이다. 흐물흐물해진 대파 가득한 국밥 한 그릇에 여행의 즐거움, 기쁨, 설렘 등이 진하게 우려졌다. 여러 정갈한 반찬 중 대파김치는 당연히 으뜸 이다. 다들 포장해서 사 올 정도이니 말이다. 국밥 한 그릇을 맛나게 만들 기 위해 대대로 이어온 가업의 자존심이 존경스럽다. 진정한 노포 맛집이 다.자랑이라도 하듯 여러 인사들의 흔적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낡은 풍금이  아련하다. 언뜻 보면 식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악기이지만, 전통이라는 깊은  울림의 결은 같다. 나태주 시인이 기증한 풍금의 건반을 두드리며 풍금의  시를 낭송하고 싶다. 어느 먼 곳에서 내 이름 부르는 소리…. 어려운 시절  시장통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던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를 가만히 불러본다. 

 

나태주 시인의 풍금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 도착한 숙소는 공주 한옥마을이다. 평소에는 인기가  많아 예약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해가 지고 어두운 시각이라 사방이 고요하 다. 낮 시간대의 직선적인 피로가 한옥마을의 곡선을 보니 금방 누그러진 다. 한옥마을의 장작불 아궁이는 밤새워도 다 못할 이야기에 불을 지핀다. 새벽잠에 듣는 빗소리마저 정겹고 말간 한옥마을 풍경은 찌든 마음을 말끔히 씻어준다. 


 금방 세수한 청청한 얼굴로 여백의 미, 이틀째 날은 어제 저녁 만찬을 즐 겼던 새이학가든에서 하얀 국밥을 먹는 것으로 시작된다. 밥이 보약이다. 백제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성왕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천도했다. 그는  왕권 강화를 이룩하고 백제 중흥을 염원하였다. 삼국시대로 돌아가 천도 행 렬을 따르는 백제인의 마음을 잡고 부여로 향한다.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부 여에서 사비천도 퍼레이드 행사를 펼친다. 


 부여박물관에는 때마침 ‘백제 금동대향로3.0-향을 사르다’라는 주제의  특별전시가 진행 중이다.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영상도 관람하고 문화 해설사의 설명도 들으며 1993년12월12일 세상에 나온 향로가 전하는 메시지 를 생각한다.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고 보전하려는 자세는 늘 필요하다. 후 손은 문화의 자긍심을 가지고 문화재 하나하나를 발굴 보전하여야 할 것이 다.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백제 금동대향로 특별전시회, 다음 2033년 에도 우리는 올 수 있을까.  

백제금동대향로, 백제 문화의 꽃

 정림사지오층석탑 앞에 선다. 화가 불끈 치솟는다. 중국 앞에서는 풍전등 화였던 지난 역사가 아리다.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이 1층 탑신에 새겨놓은  글귀,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 분명 백제인의 석공이 눈물을  머금고 한 자 한 자 박았을 것이다. 백제의 수난을 고개 숙여 돌아보며 그 들의 아픔을 토닥토닥 달랜다. 흐린 가을 하늘에 무거운 구름이 지나간다. 석탑 뒤쪽 건물에 앉은 석불좌상은 또 얼마나 마모되고 망가졌는가. 제대로  보전하지 못한 무지함이 부끄럽다. 정림사지박물관에서도 백제인의 아픔이  가슴을 짓누른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다

 내내 가라앉은 마음을 정상으로 끌어올려 준 것은 음식이다. 부여군 규암 면 황토정에서의 연불고기 점심은 힐링이다. 연잎밥과 한우 불고기는 역시 나 노포 맛집의 완결판이다. 손수 가꾼 식재료로 우아하게 차려낸 밥상은  그득하다. 어머니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연잎을 펼치니 궁남지 연꽃이  피어나듯 윤기 자르르 흐르는 찰밥이 다보록하게 앉아있다. 찰 밥 한 덩이  입에 물자 입안은 연향으로 향기롭다. 

 

 다시 부소산성으로 올라 백제인의 숨결을 읽는다. 낙화암에서 의자왕과 삼 천궁녀 그리고 송시열에 대하여 나름의 토론을 펼치며 흘러가는 백마강을  묵묵히 바라본다. 바위틈에 자라는 고란초에 눈길을 보내며 고란사에서 마 신 약수 한 사발로 삼 년은 더 젊어졌을까. 황토돛배 선상에서 부소산 자락 을 올려다보며 과거와 현재의 가을을 품는다. 구드래 나루터에 도착하여 대 전으로 돌아오는 길, 1박 2일의 여행은 끝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의 출발 이라고 했던가.

낙화암 가는길 , 시몬 너는 들리느냐 

 여백의 미 , 백제 역사길에서  발길 닿는 곳마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아름다웠다. 빈틈없는 빼곡함보 다 여백이 많은 비움을 마련하려는 요즈음 내게 딱 맞는 여행이었다. 불필 요한 것으로 그물망처럼 촘촘했던 마음에 여백이 생기고 노을 지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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