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딩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숙소를 나섰다.
아침 8시에 눈을 떠서 화장도 건너뛰고 선크림만 대충 바르고 후다닥 뛰쳐나왔다. 빌려놓은 스쿠터가 아깝기도 했고, 저녁이 되면 스쿠터를 운전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에 최대한 해가 지기 전에 구석구석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오늘도 날이 맑았다. 바람은 어제보다 덜 부는 듯하다. 일단 차가 많아지면 가기 힘든 헝춘쪽을 가보기로 했다. 평일 오전이라 지나다니는 차가 그리 많지 않았다. 중간에 세븐일레븐에 들려 내 최애 커피가 된 옌마이나티(오트라떼) 아이스 대 한 잔을 시켰다. 대만와서 먹은 커피 중 최고다. 비싼 오틀리를 넣어준다. 가격은 대 75위안 중 65위안. 10위안 차이인데 사이즈 크기가 꽤 나니 대짜 먹는게 이득이다.
헝춘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숙소를 컨딩에 잡길 잘했다. 그냥 한바퀴 돌다가 어제 스쿠터 렌탈샵 사장님이 알려주신 Maobitou 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점점 차가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도로에 나밖에 없었다. 너무 신난다. 야호! 소리를 지르며 제법 익숙해진 스쿠터를 몰았다.
어제의 주인공이 롱판 공원이었다면, 오늘의 주인공은 마오비터우 공원 되시겠다. 롱판 공원에서 보는 바다가 에메랄드 빛이었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파란 바다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볕에 목과 어깨가 뜨거웠다. 그래도 열심히 땀을 닦으며 구경하기 바빴다. 한참을 머무르며 풍경을 감상하다가 사진을 찍었다가. 역시 여기도 바람이 많이 분다. 명소에는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룰이 있나보다.
아침에 오트라떼 한 잔 마신게 전부여서인지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Houbuhu 호우비우에 가면 싼 가격에 사시미를 먹을 수 있다며 알려주신 렌탈샵 사장님의 말씀에 그곳으로 향했다. 오늘은 사장님 투어다.
가는 길에 도로에 아무도 없고 경치가 너무 좋아 잠시 멈추었다. 이런 맛에 스쿠터로 여행하나보다. 내가 내리고 싶은 곳에 아무때나 내릴 수 있다. 스쿠터를 세워놓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림같다. 나도 같이 찍고 싶었지만 삼각대가 없어 방법이 없었다. 그냥 스쿠터와 바다만 한장.
다시 달리기 시작.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바다가 자꾸 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어제보다 바람이 덜 부니 딱 좋다. 스쿠터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면서도 시원한 정도. 그렇게 신나게 달리니 곧 작은 수산시장같은 곳이 나왔다. 구글맵을 켜보니 이 곳이 호우비우란다. 스쿠터를 대고 지갑을 챙겨 들어가보았다. 규모가 생각보다도 더 작다. 현지인들이 많아보이는 (저 사람들도 관광객이겠지만) 입구쪽 가게로 들어갔다. 모듬회 15피스에 100위안. 이거 하나 주세요.
자리는 구석에 혼밥하기 좋은 곳으로 배정받았다. 반대편 가게로 갔으면 바닷가 뷰였겠지만 이곳은 반대라 주차장 뷰다. 뭐 한접시 먹고 나갈거라 개의치 않았다. 생각보다 훌륭한 비주얼에 만족스러웠다. 나무젓가락을 떼어내고 먹을 준비를 했다. 아, 음료가 필요하다. 스쿠터만 아니었다면 맥주를 시켰을텐데. 아쉬운 대로 콜라가 있는지 여쭤보았다. 可樂, 有嗎? (크러 요우마? 콜라 있어요?) 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有,有。(요우, 요우. 있어, 있어.) 그 다음 문장은 잘 못알아들었다. 대충 갖다주시겠다는 말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좀 있으니 콜라 500ml 하나를 가져다 주셨다.
역시 나는 초장파다. 회는 초장맛으로 먹는다. 부산 민락회센터에서 먹은 밀치회와 깻잎, 상추, 초장이 너무 그립다. 참치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냥 몇 번 씹다가 콜라와 함께 넘겼다. 연어는 그래도 맛있었다. 저 노란색은 날치회다. 저렇게 썰어져 있는 날치알은 처음이었는데 저게 제일 맛있었다. 그래도 한 접시 다 비웠다. 다시 숙소 쪽으로 출발.
숙소 근처에 렌탈샵에 들러 밧데리를 한번 갈고 어제 간 루트로 다시 가보았다. 어제 지나쳤던 어롼비 공원도 들어가 한곳 한곳 모두 가보았다. 저 등대가 유명하지만 공원 자체가 꽤 크고 잘 관리되어 있었다.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노래 한 소절이 딱 떠올랐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남진의 님과 함께. 오늘 하루 종일 그림 같은 풍경들로 꽉 차서인지 절로 그 노래 생각이 났다. 저 멀리에 노부부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하필 해가 매우 뜨거운 시간에 방문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목덜미와 손등이 화끈하다. 아마 이곳에서 보낸 시간 영향이 제일 클 것이다.
그리고 어제 겁이 나 가지 못했던, 롱판 공원을 지나쳐 조금 더 달려야 하는 fongchueisha 퐁추이샤를 가기로 했다. 어제보다 확실히 스쿠터 실력이 나아진 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람이 덜 불었다. 역시 뭐든 하늘의 도움 없이 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퐁추이샤를 눈 앞에 두고 스쿠터를 세웠다. 내가 제일 어려워 하는게 커브길이다. 그런데 정말 꼬부라진 커브길이 턱하니 나타난 것이다. 이미 지대가 높아 겁이 나는데 거기다가 무시무시한 커브라니. 스쿠터를 대고 걸어갈까 했는데 인도가 없이 그냥 찻길이다. 어쩌지, 발을 동동 구르는데 반대편에서 바이크 한대가 쌩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헬맷을 쳐다보자 그 사람도 나를 본다. 그러더니 이쪽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잘됐다 싶었다. 그쪽으로 가는 길이 험한지 물어볼 참이었다.
니하오.
니하오.
워 야오 취 퐁추이샤, 크쓰, 워 헌 파 (퐁추이샤 가고 싶은데, 너무 무서워요)
내 더듬거리는 말을 듣더니 외국인인 걸 눈치챈 모양이다. 뎅샤. 잠시만 기다리란다. 그러더니 번역기를 켜서 나를 준다. 그런데 자판이 중국어라 칠 수가 없다. 서로 당황해서 웃었다. 내 폰을 꺼내 파파고를 켰다. 가고 싶은데 무섭다. 길이 험한가요? 하고 물으니 아니란다. 그런데 내가 내 스쿠터를 가르키자 말이 없어졌다. 저걸로는 무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그러더니 자판을 친다.
거기까지 태워줄까요?
타이완 쏘 스윗. 크이마? 셰셰! 셰셰! (가능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토바이 뒷자석을 얻어타고 퐁추이샤에 도착했다. 사실 그 커브만 돌면 금방이라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분의 시간을 많이 뺏지 않아 다행이었다.
롱판 공원에서 보는 뷰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고 싶은 곳에 가봤다는 만족감이 컸다. 잠시 내려 사진을 찍고 다시 스쿠터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왔다. 셰셰, 셰셰. 연신 말을 하니 부훼이. (아니에요) 한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 정말 좋았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차와 오토바이에 탄 사람들이 모두 아까 만난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 한결 운전이 편해졌다. 나를 도와줄 사람들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 그 믿음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중간에 대만 최남단이라는 롱컹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석양이 지는 것을 보고 돌아왔다. 이로써 컨딩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대만에서 제일 만족스러운 여행지였다.
아름다운 곳, 아름다운 사람들. 부디 이 따스함이 오래오래 간직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