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11. 출입구 찾기

by 남상순



양추자는 다음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꽤나 얼떨떨했다. 양추자는 분명히 치명타를 당했는데 이상하게도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치기는커녕 전보다 더욱 양양하게 행동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복도에서 학과장과 마주쳤을 때 양추자가 즐겁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는 것이었다. 학과장은 당황하여 쩔쩔매다가 화를 내면서 먼저 외면하고 돌아섰다. 양추자는 웃을 만한 상황에 놓여 있지 않았다. 지도 교수를 바꾸겠다고 선언한 뒤 P교수에게 자신을 받아 달라고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열 번도 넘게 찾아가 사정하고 부탁하고 땡깡까지 부려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P교수는 겉으로는 학과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속내는 달랐다. 학과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고 했다. D가 쓴 소논문 하나를 P교수가 자기 이름으로 꿀꺽했다는 것은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얘기였다. 한동안 잠잠했던 D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 가운데 열두 제자에서 탈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빛나가 선포했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나 양추자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여전히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양추자의 입장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으므로 결국은 그녀를 직접 만나 왜 모임에 안 나오느냐,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이 정도 되면 내비를 재설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불안한 눈으로 양추자를 응시하다가 용기를 냈다. 부끄러움 혹은 수치심을 그대로 노출하는 용기였다. P교수가 지도 교수를 거절한 마당에 도대체 길이 어디 있다고 내비를 재설정한다는 것인가.

“너는 열두 제자 모임이 드나드는 것이 가능한 장소라고 믿는 거니?”

“무슨 말씀이세요?”

마치 그런 문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매우 독특한 의견이므로 궁금하니까 좀 자세히 이야기해 보라는 표정이었다. 내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네 눈에는 출입구가 보여?”

“출입구요?”

양추자는 못 알아듣겠다는 듯 눈을 꿈뻑꿈뻑하는 것이었다. 나는 양추자에 비해 내가 아주 추상적인 이야기를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으나 그럴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양추자가 내 말을 추상적인 사안으로 치환했을 리도 없는 문제였다.

“오피스텔 열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리가 이용하는 화양리 오피스텔은 열두 명이 공평하게 분담하는 돈으로 관리비를 내고 있지만 적지 않은 보증금과 월세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곳은 번호키가 아니라 열쇠로 열어야 하며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빛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빛나가 없는 동안 우리는 그곳에서 한 번도 모임을 가진 적이 없었다.

“아, 뭐 꼭 그런 건….”

묘하게 일그러져 버린 대화를 수습할 도리는 없었다. 빛나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나는 그 장소 안에 철저히 갇혀 있었다면 양추자는 한 번도 갇힌 적이 없었다. 그녀는 어딘가로 들어간 적이 없었고 더더구나 누구 밑에다 자신의 이름을 등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단 한 번 들어갔던 것은 그저 학교 교문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보름쯤 후에 나는 양추자의 전화를 받았다. 지도 교수를 구했다고 했다. 놀랍게도 양추자의 새 지도 교수는 소속이 문리대가 아니라 사범대학이었다. 학칙상 그게 가능한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끝)


이전 10화비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