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탈퇴선언
쾌감과 끔찍함의 감정이 공존하는 가운데 느릿느릿 토론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얻어 맞은 지 10분도 되지 않아 양추자가 다시 흐름 속으로 뛰어들어 물길을 바꾸려 했다. 원한다면 너희는 혈투를 해라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는 식이었다. 목소리도 소곤거리는 버전으로 낮춘 채였다. 마치 누군가는 자기 질문을 듣고 누군가는 듣지 말았으면 하는 것 같았다. 내 몸은 모골이 송연하다가 전율이 흐르다가 했다. 웃음이 터질 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양추자의 목소리는 아무리 누르고 끊어 내고, 심지어는 집단이나 권력의 힘을 빌려 짓밟아도 사라지기는커녕 끊임없이 다시 일어섰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빛나는 이런 양추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나는 전철을 타고 가면서 양추자만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아까는 무안했겠다. 내가 볼 때는 네가 하는 질문들이 다 멋있기만 한데.”
양추자는 여전히 벼락 맞은 멍한 얼굴로 나를 한 번 쳐다보았을 뿐 대꾸를 않더니 헤어질 때쯤 되어 학과장이 자기를 이렇게 무릎 꿇리려고 하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다음 모임에는 못 나올 것 같아요.”
나는 양추자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일을 처리한 다음 카페로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양추자가 자유 게시판에 올려놓은 글의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자신은 열두 제자 모임에서 탈퇴하고 지도 교수도 P교수로 바꾸는 절차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말하는 것이 유일한 표현 방법인 모임에서 말하는 것을 이토록 저지당하고 보니 비상벨을 누르고 나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라는 이유를 달았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문제를 해결해 왔던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디테일로 빛나의 행동을 해석하면서 빛나와 나의 모순된 공존을 도모했다면 양추자는 학과장의 그림에서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실 공존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저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것을 선택한 셈이었다. 몇 명이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해도 피해자는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할 수 없이 그 안에 남아 있는 형태가 열두 제자의 존재 방식이었다. 그것 말고는 지금까지 수십 년에 걸쳐 공부해 온 것을 보상받을 길이 없었다. 다행인 건 타깃이 된 한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폭력은 없었는데 그건 맞았던 그 사람이 더 이상 얻어맞지 않기 위해 행동 원칙을 바꾸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저항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말이 많다고 지적하면 어떻게든 말을 줄이려고 애쓰거나 줄이는 척이라도 했다. 빛나는 한도의 경계선을 그 어디쯤에 쳐 두었다. 양추자는 다른 선언을 했다. 게다가 P교수라면 D의 지도 교수로서 학과장이 어떻게든 깔아뭉개려 하는 대상이 아닌가.
조회 수는 불티나는데 댓글은 아무도 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