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영화 '굿 라이어'
재미있게 본 스릴러 영화였다. 두 번을 보고 나서도 쉽게 헤어나기 힘든 매력이 있어 자막이 다 올라가는 것을 보고도 멍하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히틀러와 나치는 배경처리 된 느낌이 있다. 영화 중반 그 문제가 언급되었을 때 어? 하는 물음표가 만들어졌다. 뭐 더 할 이야기가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도 없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일제 강점기라는 비슷한 경험이 있고 공식적 사과니 배상문제 같은 것들이 산재해 있지만 이 영화는 사과와 참회 너머에 또 다른 개인적인 숙제가 있음을 말한다.
소녀시절 히틀러를 숭배하던 청년에게 강간당한 릴리는 그 방에 60년 간 갇혀 지냈다고 고백한다. 그런 장소에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 거론된 방법 중 하나는 가해자가 사과하고 또 사과하고....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계속해서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 <굿 라이어>는 나치 전범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이 사회 어느 구석엔가 죽은 듯이 처박혀 있을 것이라는 환상부터 깨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은 누구나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야만은 현재진행형이고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얼마나 정확하고 그럴듯한가.
릴리가 그 어두운 방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 릴리를 강간했던 한스는 청년시절의 그 방식 그대로 살아가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기를 치고 사람을 죽이면서 타인의 삶을 짓밟았을 것인가.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이 우리 돈으로 50억이 넘는다. 그의 부유함과 성공은 신문에도 나오고.... 릴리는 마침내 복수의 방법을 정한다.
한스를 통과하려면 한스를 극복해야 한다. 그가 현재 여든이 넘은 나이로 여자를 꼬여내 사기를 치면서 통장에 돈 모으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안 릴리는 돈 많은 미망인이 되어 기꺼이 그의 미끼가 된다. 그렇게 해서 거짓말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두 노장 배우의 나이를 생각하면 입이 딱 벌어진다. 영화 촬영 당시 82세, 76세란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한스가 용서해 달라면서 무릎을 꿇으려고 하는데 릴리가 "나는 이미 용서했어"라고 하면서 김을 빼는 장면이다. 국가가 나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며 아무리 화해를 주선하고 용서를 거론해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남아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 이 문제는 그런 사회적인 용서와는 별개의 과제가 더 있음을 짚어낸 것이라고 본다. 릴리가 한스에게서 벗어나려면 한스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자면 그를 자기 앞으로 끌고 오거나 릴리 자신이 먹잇감이 되어 그의 세계로 던져져야 한다. 그런 다음 한 판 붙는 거다.
진정한 복수는 그가 가진 소중한 것, 손에 쥔 채 애지중지하는 것(수집된 악)을 지금 빼앗음으로써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것이 극복이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같은 주제, 같은 계열의 영화에서 <굿 라이어>는 성큼 더 나아간 느낌이다. 피해자 가해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주체로 우뚝 선 주인공 덕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