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고 애쓸수록 더 안 되던 날

더 애쓰는 법이 아니라 힘을 빼는 법

저는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부활 미사 특송 준비가 한창입니다.
전공자인 지휘자님은 아마추어 성가대원들의 느슨한 소리를 쉽게 지나치지 않습니다. 알토 파트인 저는 높은 음을 내는 소프라노 단원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조금 더 편안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높은 음을 시원하게 내는 소프라노 단원들을 볼때마다 정말 대단하시단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무난하게 부를 수 있는 알토 파트지만 그래도 힘든 점은 있습니다. 바로 낮은 음을 부를 때 입니다. 낮은 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질수록 목에는 힘이 들어가고, 소리는 오히려 더 얇게 갈라집니다. 그럴 때면 연습실의 공기까지 덩달아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낮은 음을 어려워하는 알토단원들을 향해 지휘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알토, 상체를 확 젖혀보세요. 누워서 소리를 내봐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누워보라니요.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해보았습니다. 상체를 뒤로 젖히고, 시선은 악보 대신 천장의 형광등을 향했습니다. 뒤로 넘어질 것 같은 불안이 잠깐 스쳤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그 순간 목을 조이던 힘이 조금 풀렸습니다.

악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잘해야 한다’고 버티던 몸의 긴장이, 낯선 자세 앞에서 잠시 느슨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소리를 내보니 평소보다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안정된 소리가 났습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입니다. 지휘자님을 만족시킬 만한 소리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휘자의 반응은 무심했습니다.
“더 연구해보세요”

지휘자님에게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소리였나봅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순간을 오래 붙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낮은 음을 내지 못했던 이유가 단지 실력 부족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제 목을 제가 먼저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배움은 무엇을 더 채워 넣는 일이기보다, 나를 가로막는 힘을 덜어내는 일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보통 배움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알고, 더 익히고, 더 잘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배움은 더하는 일이 아니라 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쓸데없이 들어간 힘을 빼고, 스스로를 옥죄던 마음을 풀어내는 일입니다.

나를 아끼는 방법도 비슷합니다.


정답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삶의 각도를 조금 바꿔보는 것입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기듯, 잠시 기대어 보는 것입니다. 계속 힘을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애써 움켜쥐고 있던 것을 조금 놓을 때, 오히려 내 안에 있던 본래의 소리가 더 잘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완벽한 합창을 해내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저는 하나를 배웠습니다. 잘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때로는 나를 더 경직시킨다는 것, 그리고 나를 아끼는 일은 더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힘을 빼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제가 배운 것은 노래 기술만이 아니었습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기는 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에게도 조금 기대어 보는 법이었습니다.

이전 08화번호표가 아니라 사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