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조종 실습을 해보는 시간, 자기는 못하겠다고 떼를 쓰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절대 안한다고 완강히 버티던 작은 어깨였습니다.
그 아이를 달래 이륙 버튼을 누르게 하기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날 무렵,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아이는 조종기를 놓지 않았습니다. 마무리 인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저에게 더 하고 싶다며 아쉬운 마음을 가득 보여주었던 그 아이가 여전히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방금 전까지 공포의 대상이었던 기체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아이의 눈빛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보며 저는 묘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게 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었습니다.
주입식 교육의 시간에는 제가 정답을 쥐고 있었습니다.
제가 설명하고, 아이들은 이해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서 있는 현장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만의 정답을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변화가 너무도 다채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두려움 앞에서 멈추고, 어떤 아이는 망설이다가도 한 번의 성공으로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 어떤 아이는 잘하는 것보다, 해냈다는 경험 하나로 전혀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저의 문제는, 그 장면들을 더 이상
“아이들이 좋아하네”
라는 말로만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저 아이가 느낀 공포는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그 공포는 어떻게 흥미로 바뀌었는지,
그 짧은 비행의 경험은 아이 안에 무엇을 남겼는지.
저는 그 변화에 더 정확한 이름을 붙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배우기로 했습니다.
전문성이라는 말은 때로 너무 크고 거창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제게 내밀어준 그 소중한 변화의 순간을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 사람,
그 순간을 더 정확히 이해하고, 더 안전하게 품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배움이 나를 아끼는 방법이 되는 순간은 바로 이럴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더 넓고 깊어질수록, 내가 사랑하는 세계를 더 잘 품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입니다.
나를 아끼는 배움은 결국,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가능성이 더 잘 펼쳐질 수 있도록 돕는 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