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향에 갔다가 좁은 시골길에서 시골 버스를 만나 그 뒤를 한참 따라 갔었다. 이 시에서처럼 정류장 표시도 없는 정자나무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내리고, 길가 어디선가 손 흔들어 버스를 세워 아저씨 한 분이 차에 오르며 달려가는 시골 버스. 제한 속도보다 더 천천히 달리는 시골 버스의 뒤에서 쫓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앞지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므로 내가 그 버스에 탄 듯 느린 속도를 즐겨보기로 했다.
속도를 줄이니 사과나무 밭의 어린 사과 열매와 길가에서 흔들리는 작은 꽃들이 자세히 보였다. 어느 이상향의 하늘같은 맑고 푸른 하늘과 무성한 초록의 내음이 더운 공기와 함께 온 몸을 덮었다. 큰 비가 지나간 시냇물의 물소리는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것이었는지. 모든 감각이 열리고 고요한 풍경을 담느라 마음이 비워지는 그 순간, 놀라운 것은 고향 길을 달리는 중이었는데도 문득 여행자의 기분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시골 버스 한 대가 만들어준 그 속도 덕분에 나는 짧은 여행을 한 것 같았다.
시골길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며 여행이라는 말을 곰곰 생각했다. 여행의 이유는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고 새롭게 깨닫는 데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여행을 떠나면 가슴 속에 있는 짐을 다 내려놓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며 큰 짐을 꾸리고 집을 떠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리베카 솔닛이 말한 ‘마음의 발걸음’이 진짜 여행의 목적이고 이유여야 할 거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언젠가부터 여행이라는 말이 관광과 뒤섞인 느낌이 들어 불편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에 돌아와 이 시를 다시 펼쳐 읽다가 알았다.
‘우두커니’.
그렇다. ‘우두커니’는 목적 없이 바라보고 멀거니 눈을 맞추며 마음이 멈춰 있는 상태이다. 먼 바다를, 먼 산을, 붉은 노을을 혼자 바라볼 때의 모습이며, 약속한 사람이 걸어올 곳을, 당신과 마셨던 커피 향을 그리워할 때의, 첫눈 소식이 있는 하늘을 쳐다볼 때의 마음이다.
내가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바로 이 ‘우두커니’의 시간을 원하기 때문이구나 싶었다. 생활의 산란함을 잠시 접고 아무런 악의도 선의도 없이 보이는 대로 보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싶은 그런 시간들 말이다. 그런 면에서 시골 버스의 속도와 잔잔한 흔들림은 우두커니가 되기에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먼 이국의 명승지가 아니라 고향의 시골 버스에 실려 노을이 풀어지는 풍경을 끝까지 보는 것이 내겐 더 좋은 여행일 테니까… 그리고 깨어진 것이 마음이라면 여행은 더 따뜻해야 할 테니까… (이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