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책 한 권
(2022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나는 늘 내게 시의 길을 열어 준 사건은 대학 2학년 도서관에서 박재삼 시인의 시집을 우연히 만났던 일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먼지가 곱게 내려앉은 낡은 시집 위 시인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책장을 넘기다 만난 시 한 편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고.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라니. 때마침 도서관 창문 너머 하늘에는 서울의 붉은 석양이 번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난 스무 살 앳된 청춘에게 울음이라는 단어는 어떤 것보다 가까운 말이었고, 그 울음이 타는 풍경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그 자리에 박힌 듯 서서 몇 번을 읽는 동안 저절로 외워질 만큼 친숙한 리듬과 시어들은 아름다웠다. 슬픔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이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데도 가슴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니 내 안의 딱딱한 슬픔이 풀어져 노을처럼 번지는 느낌이라는 게 더 정확한 것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시 속의 풍경에 들어간 듯한 기분은 나에게 운명이라는 말을 저절로 허락하게 했으니까.
그날 이후로 내 가방에는 늘 누군가의 시집이 들어 있었다. 도서관에 있는 박재삼 시인의 시집들을 차례로 다 읽었고 학창시절 교과서에만 보았던 청록파 시인들의 시집도 한 권씩 내 손을 거쳐 갔다. 윤동주를 읽을 때는 마치 눈빛을 나누듯 설레었고 백석은 내가 나타샤가 된 것 같은 상상 속에서 만났다. 지금도 눈 오는 밤이 터무니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모두 그의 시가 만든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진 것 없는 청춘에게 시가 쏟아붓는 햇살은 따스하고 눈부셨다. 그 안에서 마음껏 거니는 동안 내 안의 무엇이 싹을 틔웠을 거라는 게 지금까지 내가 가진 믿음이었다. 아주 까맣게 잊고 있던 낡은 책 한 권을 다시 보기 전까지는.
인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돌이킬 수 있다 해도 결코 그러고 싶지 않은 일도 있다. 이것은 오랜만에 찾은 고향집 서재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다가 든 생각이다. 서재라고는 했지만 창고라고 해도 좋을 구석방에는 우리 남매가 어린 시절에 본 동화책부터 고향을 떠나던 나이까지 읽었던 다양한 종류의 책이 뒤죽박죽 꽂혀 있다. 나는 나대로 동생은 동생대로의 취향과 성격을 그대로 보여 주는 책들이 그날따라 마음을 끌어당겼다. 삽화가 조잡한 『콩쥐팥쥐』도 있고 문고판이긴 해도 세계명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책들도 꽤 여러 권 있었다. 수많은 밤을 바쳤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은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만난 듯 반가웠다. 책마다 남은 기억을 더듬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동생이 산 책인가 싶어 집어 들었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색은 바랬으나 금박으로 새긴 한자 제목이 선명한 『한국의 명시』였다.
입으로 먼지를 후 불어 내고 조그만 책의 첫 장을 여는 순간, 나는 중학교 입학을 한 신입생이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세계의 문호나 위대한 미술가 같은 이들의 이름을 집에서는 누구에게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우리나라 시인의 이름조차도 말해 본 적이 없었다. 알파벳도 배우지 못한 엄마의 교육 이력으로는 나에게 예술의 영역을 넓혀 줄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엄마에게는 책에 대한 깊은 존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사달라고 했을 때 어떤 형편에서도 거절하는 법은 없었다. 그렇지만 겨우 열세 살 시골 계집애가 좋은 책과 좋은 글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었겠는가. 로터리 근처 딱 한 군데 있던 작은 서점을 기웃거리다 제목이 끌리면 엄마에게 책값을 받아 사는 게 전부였으니. 그런 나에게 단비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작은 고모부가 되신 분이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셨던 것이다. 심지어 가까운 곳에 사는 바람에 무람없이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크든 작든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오면 가장 크게 칭찬했던 분도 고모부셨다. 우등상보다 백일장 장원이 더 자랑스러워진 건 다 그분의 환호 덕이었다. 이 오래되고 낡은 『한국의 명시』는 영어사전과 함께 고모부가 내게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신 책이었던 것이다.
표지를 열면 책을 준 날짜와 고모부의 글씨체가 세월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국의 명시라는 제목에 맞게 유명한 시인들의 대표 시들이 몇 편씩 엄선된 책이었다. 하지만 한자가 너무 많아서 옥편을 찾지 않으면 시 한 편을 끝까지 읽기 어려운 책이었는데도 나는 옥편 찾는 법부터 배워서 그 시집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시인의 이름은 전부 한자로 적혀 있어서 귀찮을 땐 시인의 이름 따위는 모른 채 읽기도 했다. 김소월 시인의 이름만 보고 여자인 줄 알고 있었던 때였으니 다른 건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다만 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내가 마음으로 몸으로 처음 느꼈을 건 분명하다. 가장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문장들에 흠뻑 빠졌을 테고 어둠을 좇는 몽상가들의 모습에는 반가움으로 달려갔을 테니.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때 남들은 탓하던 나의 소심하고 예민한 기질이 그들과 조금 닮았음을 이 시집을 읽으며 좋아하고 안도했을 것도 같았다.
간간이 밑줄이 그어져 있는 그 시집을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와서 다시 넘기는 내 손길이 떨렸다. 알지 못했어도 혹은 보이지 않았어도 나는 이미 오래전에 시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고맙고 애틋했다. 그리고 그 문을 열어 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뜨겁게 아팠다. 왜냐하면 내 이름의 책 한 권을 드리기도 전에 고모부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이 모든 기억과 감사를 떠올리지도 않은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박재삼 시의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읽을 수 있었던 건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시의 씨앗을 심어 준 고모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아서였다.
그때 난 어렸고 삶의 외경에 대해 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시는 내 안에서 나를 움직였던 게 분명하다. 다른 일이 흐릿하게 잊히는 동안에도,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기억하지 않았는데도, 그 책은 내 가슴속에서 그대로 펼쳐져 있었던 것 같다. 살아오는 동안 마음의 사막에서 헤맬 때도 그 책 속의 언어는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고 세상 속에서 홀로 있을 수 있었던가 보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라는 공간이 있었으니까. 적어도 때로는 모든 것을 꿈꿀 수 있다는 걸 시가 아니면 어디서 배웠겠는가. 내 삶의 어느 하루를 열어 준 책 한 권으로 전에 없이 마음이 고결해진 깊은 밤이었다. (이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