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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운진 Apr 07. 2023

분꽃이 피는 시간

(2022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다른 해보다 이르게 9월 초에 추석이 있던 때였다. 명절 음식을 끝내고 어머님과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부모님의 집을 벗어나서 다녀 본 적이 거의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친구들이 있는 고향이 아니고 시댁이니 더 그러했겠으나, 여러 날 머물러 있지 못했던 바쁜 일정도 한 가지 이유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큰길을 조금 내려와 낯선 길을 몇 번 꺾어 드니 멀지 않은 곳에 초등학교가 보였다. 학교 근처라 피아노 학원, 수학학원과 영어학원,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뽑기기계 몇 대를 세워 놓은 작은 문방구 앞에서는 오랜만에 동전을 넣고 뽑기도 했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데구루루 굴러 나온 공 안에는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공룡이 들어 있었다. 알로사우루스인지 티라노사우루스인지 구분 지을 수 없는 공룡 하나로 잠시 편이 나뉘었다가 반짝이 스티커를 하나씩 손등에 붙이는 것으로 다시 길을 이어 갔다.


    어디든 골목길이 주는 안온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좁은 골목길은 조금씩 기울어진 전봇대, 담을 넘어온 감나무 가지들, 군데군데 모아 놓은 쓰레기더미로 삶의 냄새를 피워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유난히 골목이 많은 동네였다. 만약 나 혼자 무심코 접어들었다면 분명히 길을 잃고 비슷한 이 골목들을 여러 번 맴돌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괜히 돌아갈 길을 걱정하며 또 한 번 골목 귀퉁이를 돌았는데 일순 눈앞이 환해졌다. 오래된 담벼락 아래 분꽃 무더기가 있었던 것이다. 보도블록이 깨져 나간 길과 담 사이의 비좁은 땅에 심어 놓은 분꽃들이었다. 허리춤까지 튼튼하게 자란 분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낡은 담벼락 주인의 소박한 미적 감각이 만들었을 게 분명한 예쁜 풍경이었다. 진분홍과 빨강 사이의 꽃빛이 샤갈의 그림 속 색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 순간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보다 반 옥타브쯤 높은 목소리로,

“분꽃 핀다, 밥하러 가자”고 하셨다.


    밥하러 가자는 말에 섭섭함이 제일 먼저 느껴졌다.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다가 겨우 나왔는데 또 밥하러 가자니… 시댁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되새겨지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고자 더 무거운 마음을 다독였다. 그런데 어머님은 움직이지도 않고 분꽃 앞에서 골똘한 모습이었다. 가만히 보니 꽃씨를 따고 계셨다. 아이들과 나도 곁에 서서 언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꽃씨를 몇 개 따서 주머니에 담았다. 나중에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장독대 옆에 가득 심어야지 하는 게 나의 비밀스런 소망이었다. 저물녘 장독대 뒤로 흔들리는 분꽃 울타리는 얼마나 운치 있을까. 노을빛과 꽃빛이 겨루는 그 풍경을 혼자 행복하게 상상하고 있는데, 다시 들려온 어머님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아련하고 쓸쓸해져 있었다. 까만 분꽃 꽃씨를 세면서 어머님은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을 단번에 건너 추억 속에 서 계셨다.


    암술과 수술을 뽑은 뒤 나팔처럼 생긴 꽃을 뿌뿌거리며 불기도 했고, 길쭉한 꽃을 귀걸이로 달고 아가씨 흉내를 내기도 했고, 까만 콩알 같은 꽃씨는 가루를 내서 얼굴에 분으로 바르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졌다. 나도 친구들과 분꽃 귀걸이를 달랑거리던 유년의 골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또래들과 밖에서 놀다가도 분꽃이 하나둘 피면 어김없이 저녁밥을 하러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는 어머님의 말끝에는 눈물이 달려 있는 듯도 했다. 그러니까 분꽃 핀다, 밥하러 가자던 조금 전의 그 말은 그 시간 속의 소녀가 한 것이었다. 몸에 새겨진 기억의 말이었다.


    증조모까지 계시던 시골 대가족의 맏딸로 자라는 여자애에게는 지루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청소해야 할 대청마루의 먼지라든가 널어야 할 빨래가 언제나 있었을 터이다. 그뿐인가. 저녁밥쯤은 어린 손으로도 거뜬히 해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잠시 틈이 생겨 바깥에서 재밌는 놀이에 빠져 있었더라도 담장 아래 분꽃이 꽃잎을 펼치면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날 수밖에. 그 순간의 아쉬움과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모르는 작은 원망은 분꽃이 피는 시간에 어린 애의 마음에도 매일 피고 졌을 것이니 어머님에게 분꽃은 가르치는 바 없이 삶을 이해시키는 꽃이 아니었을까 싶다.


    꽃 한 송이로 온갖 것을 만들어 내던 어린 시절이 어머님에게도 있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낯설면서도 따스하고 또 조금은 애잔하게 느껴졌다. 살갗이 아직 두껍지 못한 소녀였던 어머님의 모습은 어땠을까. 어떤 꿈을 꾸고 어떤 내일을 기다리는 소녀였을까. 부를 수 없는 이름이거나 혹은 끝없이 불렀던 이름이 있었을까. 어머님의 마음속 어딘가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소녀를 나는 오늘 분꽃으로 만난 것 같았다.


    햇볕이 따가운 한낮에는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가 해넘이에야 꽃문을 여는 분꽃. 누군가에게는 밥 짓는 시간을 알려 주는 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저녁이면 찾아오던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서러움, 먼 내일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을 달래 주는 꽃이었을 게다. 분꽃은 한 송이만으로도 저녁을 밝히기에 충분한 꽃이라고 했던 박완서의 문장도, 분꽃이 피는 저녁은 쓸쓸하고도 황홀했다고 했던 이해인 수녀의 시도 오롯이 이해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머니 속의 분꽃 씨앗을 만지작거리며 이 씨앗이 뒷마당의 꽃으로 필 때쯤이면 오늘의 짧은 산책이 몹시 그리워지리라 생각했다.  (이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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