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아홉 살에서 서른 살로 넘어가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고, 그때의 남자친구는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미래를 함께 그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잔인하게 이별을 고했다.
이별의 아픔에 잠겨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회사가 점점 바빠지면서 야근주의 기미가 조금씩 보이더니 결국에는 끝이 없는 야근행 길로에 들어서게 됐다.
야근에 야근에 야근에 야근.
큰마음먹고 열심히 다녀보리라 결심하며 결제했던 비싼 헬스장이 문을 닫는 시간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회사에서 나오는 저녁 식비로 뭘 먹을까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캘린더에는 점점 ‘야근’ 일정이 쌓여갔고 성격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져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짜증이 올랐다.
하루는 텅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일을 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회사 다니다가 적당한 누군가를 만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이 일도 계속하고.
나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하는 거야?
나 괜찮은 거 맞아?
내 생각의 결론은 아니, 였다.
지금 당장 미래의 계획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 미래에 이 회사는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조금은 충동적이었지만 적어도 이 사표를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사표를 내고 나서 뭘 할까 고민하는데 그간 계속 부러웠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회사를 꽤 오래 다니다가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간 친구였는데 그곳의 삶이 제법 행복해 보였다.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꾸 퇴사하고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꼬시던 친구였다.
이제 넘치는 게 시간이다. 이렇게 퇴사를 하고 바로 취직을 하지 못한다면 몇 달간 그냥 집에서 놀고먹고 빈둥거릴게 뻔하다. 남자친구도 없어 누군가에게 기다려달라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을 좋아해 여기저기 해외를 야금야금 다녀왔었지만 길어봐야 일이 주의 여행이 아닌,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평생 해외에서 살아볼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조금 고민하던 점이 있긴 했다. 오랫동안 있기엔 위험부담이 크다고 생각했고, 딱 3개월만 살아보고 싶은데 캐나다는 11월부터 4월까지는 계속 춥다고 한다. 내가 퇴사하는 시점은 9월이어서 날씨운이 없으면 오랫동안 추위만 떨고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나는 캐나다 국기에서 그 합의점을 찾았다. 캐나다는 뭐야? 단풍국이지! 10월에 가을 단풍잎을 실컷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벅찼다. 그리고 핼러윈, 크리스마스, 새해를 해외에서 보낼 수 있다니! 정말 멋지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멀게 만 느껴져 감히 꿈꾸기도 어려웠던,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