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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린 Oct 25. 2023

전 직원을 퇴사시켰다.

병원의 나쁜 문화 뿌리 뽑기

얼마 전 간호법에 대해 검색해 보던 나는 낯익은 단어를 발견했다. 바로 '태움' 이다. 이는 내가 병원에 처음 왔을 때 이해할 수 없던 간호사들 사이의 문화이기도 했다. 이 요상한 단어의 뜻은 포털 사이트나 나무위키의 검색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간호업계에서 아랫직원에게 행해지는 군기를 잡는 문화이다. 그 의미를 풀어보자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라는 의미에서 '태움' 이라 한다고 한다.

  

'태움' 의 의미와 사례 @나무위키


23년 1월, 의정부지법 형사 재판부는 폭행과 모욕 혐의로 기소된 선배 간호사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그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태움' 을 후배 간호사에게 행한 것. 오랜 기간 괴롭힘과 폭행까지 당하던 간호사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사건을 TV뉴스를 통해 접한 것은 나도 처음이었지만, 사실 선배 간호사의 '태움' 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는 애석하게도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방문한 피부과에서 한 명의 데스크 직원을 보고 오래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앳되어 보이는 친구인데 이제 막 입사한 듯했다. 오랜 기간 다닌 피부과라 직원 대부분의 얼굴을 알고 있는데, 분명 처음 보는 직원이었다. 나는 병원에 가면 대기할 때마다 핸드폰을 보기보다 병원이 돌아가는 것을 구경 혹은 관찰하곤 한다. 안내 프로세스나 동선 등 다른 병원은 어떻게 시스템이 되어있는지 의심받지 않고 맘껏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피부과의 대기시간이 꽤 긴 덕에 내 시선은 새로운 직원에게 향해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그 신입직원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직원들이 대놓고 무시를 하는 것이 확연했다. 조심스레 건네는 말에 그 누구도 응해주지도, 답해주지도 않는 불편한 상황이 내가 바라보는 내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실수를 한 것인지 된통 혼나고 있는 모습.. 기존 직원들의 틈 사이에서 잔뜩 기가 죽어 있는 그 직원은 '태움'을 당하고 있었다.



굴러들어 온 돌.


내가 병원에 처음 왔을 때, 당연스럽게도 모든 직원들의 배척과 이유 없는 시기, 질투를 받아야 했다. 내가 관리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따르지 않으려 했다. 대놓고 말을 무시하거나 앞에서는 따르는 척을 하다가도 결국 뒤에서는 내 욕을 하기 바빴다. 병원 업무를 배워야 하는 내가 묻는 것들에 바쁘다며 제대로 답도 해주지 않기 일쑤였다. 개중 몇 명의 친구들은 간혹 가벼운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오곤 했지만 그들 조차도 모두가 같이 있을 때는 나에게 사소한 한 마디 건네는 것에 눈치를 보곤 했다. 나는 처음 병원에 왔을 때에 이 '태움' 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여초회사이다 보니, 그리고 내가 병원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하니 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나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직원,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조차 그 태움이라는 짓을 하고 있었다.


우리 병원은 처음 오픈할 때에 이미 개원의셨던 세 분의 의사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병원을 개원하게 된 덕에 모두 다른 세 병원에서 모인 직원들로 병원을 시작했었다. 그렇다 보니 직원들 간에는 자연스레 같은 직장을 다녔던 직원들끼리 그룹이 나뉘게 되었고 본인과 다른 병원에서 온 직원들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 살갑게 지내지 않는 현상이 있었다. 간호실장이라고 한 명이 있었지만 그녀 역시도 본인이 데려온 직원들을 챙길 뿐이었지, 전 직원의 화합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하루는 데스크 직원이 간호사실에서 코 삼키는 소리를 죽이며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환자분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재차 물어도 고개만 저을 뿐, 답도 하지 못한 채 훌쩍이고 있는 직원에게 휴지를 건네고 나오니 다른 직원에게 메시지가 왔고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데스크 전 직원이 아침에 간호실장에게 태움을 당했다며, 진료시간에 데스크에서 서로 웃으면서 인사한 것, 그리고 주머니에 초콜릿이 들어있다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아니, 주머니에 초콜릿이 든 것은 어찌 알고??) 나는 이때에 '태움' 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고 인터넷에 간호사 문화 등을 검색해 보며 좀 더 상세히 알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존재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직원들이 동작 하나하나에도 눈치를 보기 바쁜지 드디어 이해가 갔다.


병원은 직원들의 이동이 잦은 직종 중 하나이다. 다양한 파트의 직원들 보다도 특히 간호사의 이직률은 상당히 높은 편인데 신규간호사의 경우 입사 후 1년 이내에 퇴사하는 비율이 무려 50% 나 된다고 한다. 그 사유의 1위는 '타 병원으로 이직' 이다. '태움' 같은 좋지 않은 문화가 자리 잡고 있으니 견딜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거다.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그 시기에도 간호사들은 계속 그만두고 채워지고를 반복했다.


2017년도부터 급격히 오르는 신규 간호사 사직률. @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 병원간호사회




간호사들은 원래 말 많아


병원 개원 후 5개월 정도 지났던 것 같다. 그들의 태움은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나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갑게 대하는 작전을 쓰고 있었다. 사실 겉으로나 그랬지, 유난히 서러운 날에는 혼자 울기도 하고 엄마에게 속시원히 왜인지는 말도 못 하고 몇 번을 그만둘까, 말까를 반복하며 묻곤 했다. 그러면서도 타인에 의해 약해지는 내 모습은 또 싫어서 원장님에게는 티도 내지 않고 나 홀로 마음이 단단해지는 과정을 이겨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진료가 끝나고 원장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원장님은 무덤덤히 서랍 아래쪽 깊숙한 곳에서 꾸깃한 A4사이즈의 종이 두어 장을 내미셨다. 글자가 빼곡히 적힌 종이를 펼쳐보니 직원들 몇몇이 직접 손으로 눌러쓴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냥 좋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진료시간에 말없이 바깥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둥, 종일 내 방에 앉아 화장을 고친다던지 매시간 핸드폰으로 쇼핑을 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직원들의 손글씨로 정성스레 적혀 있었다. 원장님은 그것을 내미시면서 우리가 개원하고 첫 달에 받으신 거라고 했다. 울컥함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눌러 삼키며 왜 이런 내용을 받으시고도 직접 묻지 않고 계셨냐 하니 '내가 직접 판단하고 싶어서. 간호사들은 원래 말 많아.' 라고 무심한 듯 답해주셨다. 아무 말 않고 나를 믿어주고 지켜봐 주신 원장님께 감사한 마음과 함께 내가 내뿜은 열정과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진 않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을 향한 내 마음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내가 아무리 웃으며 대해도 어쩔 수 없구나,


나는 병원에 온 첫날부터 행해진 그들의 차가운 말들과 부당한 행위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더 빠르게 병원 업무를 배우려 노력했었다. 진료시간의 오전에는 진료실 밖에서 병원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익히고, 점심 이후 오후시간에는 진료실에서 원장님 옆에 앉아 차트를 대신 써드리면서 진료내용을 배웠다. 그리고 진료시간이 끝나면 매일 새벽까지 남아 각 부서의 업무, 병원의 총괄적인 부분들을 공부했다. 이것저것 내 할 일을 하고 나면 새벽 2-3시가 기본이었던 탓에 나는 자주 병원에서 자곤 했다. 대표 원장님은 늦은 시간까지 나와 항상 함께 남아주셨고 병원에 대한 내 질문세례에 진료내용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도와주셨다. 업무 시간에 직원들에게 직접 묻거나 돌아다니면서 익히고 배울 수도 있었지만 그런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직원들은 바쁘고 정신없다며 나를 밀어내기만 했다.


이 시기에 내가 믿고 의지할 곳은 원장님들 뿐이었다.


전 직원 교체를 결정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직원들은 끝없이 교체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파벌과 싸움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누군가 울거나 싸웠다는 소식을 접하곤 했다. 갈수록 우리 병원은 새로운 직원이 버틸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은 확실해져 갔다. 나 역시도 적응되지 않는 다양한 상황들을 겪어가며 꾸준히 그 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진료 이후 회의를 하던 와중 원장님은 이것 보라며 핸드폰을 내미셨다. '누가 누굴 괴롭힌다. 다들 서로 싸우는 것 아시느냐, 자기는 여기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메시지로 그만두는 직원이 원장님께 보낸 회심의 일격이었다.

'이거 직원들 때문에 골치 아프네 정말, 어떻게 생각하나?'

매일 병원이 시끄러운 통에 원장님도 고민이 아니실 수 없던 것이다. 매일같이 직원이 교체되니 원장님의 진료 역시도 불편하실 것이 당연했다. 병원은 원장이 진료를 잘 보는 것만큼이나 밖에서 의료진의 손발이 착착 맞으며 돌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싸우고만 있으니 불편함 속에 병원이 삐그덕 대면서 어찌어찌 돌아가는 것이다.

'원장님 직원들 다 교체하지 않는 이상 이 분위기 못 바꿀 것 같아요.'

내가 내뱉고도 놀란 내 답변에 원장님은 나에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하셨고 나는 그 답변을 마음속에 잘 담아두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본인들이 잘못한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이 당당한 직원들을 문제없이 퇴사시키는 것에서부터 전 직원을 다시 채용하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망설임이 공존했다.

하지만 그 망설임이 무색하게 며칠 후 또다시 집단 퇴사에 대한 소식을 접한 나는 원장님께 달려가 선포했다.

'원장님, 제가 전 직원 다 교체할게요. 이렇게 매일 나가고 또 면접 보고 새로운 직원 뽑아대느니 전부 교체하고 안정화시키는 게 나아요.'

본인은 진료만 문제없고 병원 분위기만 바뀌면 좋겠다는 원장님의 답변에 나는 바로 직원들과의 퇴사면담을 시작했다. 회사를 경영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설사 문제가 있다 해도,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트럼프처럼 그냥 'you're fired.' 하면 끝이 아니라는 거다. 게다가 대부분 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직원들을 내보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내가 전 직원 교체를 진행하는 것을 눈치챈 직원들은 갑자기 숨어있던 애사심을 불태우며 병원에서 쉽게 나가려 하지 않았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개원의 순간을 함께해 준 직원들에게 퇴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면담을 시작한 초반에는 결국 꺼낼 말이 무엇인지 서로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뱉질 못하고 빙빙 둘러 말하기 바빴다. 남에게 나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직원을 내보내 본 경험이 있을 리 없는 나에게 제일 힘든 부분이었다. 하지만 목표는 병원의 분위기 전환이라는 것을 내 감정보다 우선순위로 두기로 했다. 매일같이 녹음기를 켜고 면담을 들어오는 직원들과 말 한마디 한마디 단호하고도 조심스럽게 대화해야 했다. 내가 말을 한마디만 실수해도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 뻔했다. 노무사도 없었던 탓에 노무법을 정확하게 공부하면서 면담을 준비해야 했다. 무엇보다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나가는 직원들도 우리 병원에 안 좋은 감정을 갖지 않고 나갔으면 했다. 최대한 좋게 좋게 병원의 의사를 전달하려 노력했다. 두어 달을 끝없이 면담을 한 끝에 결국 모든 직원의 퇴사일정을 잡았다.


다행히도 말썽 덩어리였던 전 직원이 퇴사를 하기로 했고 인수인계까지 제대로 하고 나갈 수 있도록 이야기도 잘 되었지만 진정한 고민은 이제 시작이었다. 인수인계 상황에서 새로운 직원들에게 기존의 분위기가 그대로 존속될 것이 우려스러웠다.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고생하면서 전 직원 교체를 진행하는 의미가 없다. 새로운 직원 면접을 보면서도 병원의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나는 어느새 강조하고 있었고 면접자의 성향을 유심히 살폈다. 그렇게 들어온 신입 직원들이 인수인계받는 모든 공간을 뛰어다녔다. 혹시 또 '태움' 이 발생되고 있진 않은지, 새로운 직원이 좋지 않은 기존 분위기까지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데스크에서부터 방사선실이나 초음파실, 주사실 등 온 병원 구석구석을 계속 들락거리며 인수인계가 어찌 이뤄지고 있는지 그 내용과 분위기를 계속 체크했다. 기존 직원들이 부정적인 기운을 옮길 시간을 절대 내주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은 하나지만 어느 장소에도 존재해야 했다. 이 시기 덕분에 나는 모든 부서의 업무들을 상세히 알고 배울 수 있었다.




그 이후 7-8여 년이 지난 현재 병원은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평균 3-4년이다. 내가 전 직원 교체를 진행할 때에 들어와서 여태 수년을 함께하는 직원들도 있다. 시술이나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긴장감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베이스에는 직원들 서로가 이해하고 예민하지 않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항상 강조하고 직원들은 잘 따라주고 있다. 병원의 분위기가 잘 잡혀 있으니 원래 뾰족뾰족했을 듯한 직원도 쉽게 가시를 내세우지 못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사람 스트레스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 제일 큰 변화였다.


회사던 병원이던 업무가 돌아가고 일이 되려면 그 안을 구성하는 구성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어떤 업무보다도 직원들을 케어하고 관리하는 인사업무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도 이것에서다. 나는 그 때문에라도 항상 직원들 속에 들어가 직접 분위기를 살피고 어울리고는 했다. 대표인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케어해 주는 언니 같은 선임의 역할을 함께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실제 나는 세 형제의 맏언니인데, 두 동생의 맏이로서 항상 동생들을 살핀 것이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   

병원과 MSO법인 직원을 통틀어 전 직원이 50명쯤 되는 적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나는 한 명 한 명의 성격 특장점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대표로서 그리고 두 여초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처음부터 이는 쉽지 않았다. 구성원들을 전부 교체하고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던 시작점에서 업무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에는 마무리가 없는 것 같다. 나 혼자서도 아니고 구성원과 함께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거다.    


내가 수없이 많은 간호사들의 면접을 보면서 빈번히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혹시 텃세가 있나요..?' 였다.

조심스레 묻는 그들에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태움 같은 건 절대 없으니 걱정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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