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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벗는다.

꽃비가 내리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늙은 고구마처럼 파묻혀 있다가 봄이 와도 온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벚꽃이 핀거 보고 봄이 오긴 왔구나 싶었다.  나도 늙었는지 꽃만 보면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으려 든다.  어릴 적에는 꽃가라만 봐도 질색을 하던 나였는데, 지금은 공간이 부족하도록 사재기를 하고 있다.  


이 날은 지인을 모시고 점심을 함께 했다.  온천장역에서 벚꽃이 만개하여 연인들, 아주머니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최대한 다른 사람이 나오지 않게 찍으려다 보니 배경이 자연스럽게 하늘이 되니까 더 좋은 것 같다.  비록 나는 타자를 치고 있지만, 사진을 업로드하니 놀러 가고 싶은 생각이 잠깐 든다.


벚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살짝살짝 부는 바람과 함께 머리카락도 휘날리면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도 눈꽃 같아서 예쁘고, 살포시 머리 위에 앉을 때도 놀러 가자고 꼬시는 것 같다.  나도 저렇게 가볍고, 하얗고, 예뻤을 때가 있었을까?  없었다면 다음 생을 기약하자.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벚꽃 개화시기가 너무 짧다.  아무리 화려하게 예쁘더라도 너무 빠르게 벚꽃 잎이 떨어진다.  온통 길거리에 쌓인 벚꽃잎들이다.  그 화려함도 잠깐이고, 빨리 치워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나무에서 살아 숨 쉴 때가 이쁜 것이지 시들면 바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우리들의 삶과 닮았다.  


젊고 한창 좋을 때는 살아 숨 쉬는 것조차 즐겁기만 한데, 나이가 들면 시들고 그 어떤 명품을 걸쳐도 화려하거나 예쁘지가 않다.  족히 한 세월을 짧게 마감하고 간다.  죽고 나면 살아있던 것 자체가 무상할 정도로 짧게 느껴질 것 같다.   


하늘은 맑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너무 나이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절한 때에 창밖에 벚꽃이 바라보며 생을 마감하면 얼마나 좋을까?  왠지 죽기 좋은 날씨를 택하라면 낙엽보다는 벚꽃이 낫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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