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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리니 Apr 12. 2023

벚꽃이 펴서 떠오른, 그날 차인 기억 ①

미니멀리즘화의 첫번째 논제: 어떤 사랑을 해야하는가

늦가을 봄꽃과 같이 찾아온 연애 실패담


 예년보다 일찍 따뜻해진 날씨에 올해는 벚꽃이 일찍 찾아왔다. 지금은 거의 다 떨어진 이맘때쯤 작년에는 벚꽃이 만개했었고, 그 때 나는 여의도 윤중로에 있었다.


“아.. 내일 벌써 월요일이다, 출근하기까지 몇 시간 안 남았네.”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친구가 말했다.


 거리에는 애인, 친구, 아기를 데려온 젊은 부모 등 만개한 꽃길을 함께 하고 싶은 인파로 붐볐다. 행렬에 밀려 가던 길에 쳐다본 밤 하늘이 꽃으로 번진 가로수와 그 주변 불빛과 함께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저 가지를 봐. 이자카야가 떠오르지 않아?” 내가 말했다.


 으아아악. 일행이었던 언니는 감상을 저해하는 위의 말들을 애써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비뚤어지는 마음. 눈앞의 저들이 흩날리는 꽃눈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을수록, 사귀게 된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커플이 가까운 거리에서 인파를 핑계 삼아 부딪힐 듯 말 듯 하는, 간격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모습을 볼수록 마음은 우그러져만 갔다. ­그렇다. 얼마 전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에게 거절당한 비련의 나로서는 꽃이 얼마나 아름답던 간에 예뻐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러 간 벚꽃놀이는 거리의 사람과 대조되어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는 벛꽃엔딩이겠지만, 나에게는 선술집 조화. 흩날리는 꽃눈은 떨어지는 플라스틱 조각. 수거도 귀찮은.


 그 날은 일교차가 심한 날이었고, 얼마 후 코로나로 확진 되어 격리되었다. 덕분에 친구들은 비극을 노래하는 나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격리기간 동안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권진아의 ‘운이 좋았지’를 많이 들었다. 가사 중 아래의 구절이 가장 와 닿았다. 왜냐하면 몇 번 만나지 못하고 차였기 때문이다.


‘아주 자잘한 후회나 여운도 내게 남겨주지 않았으니’



 안습(眼濕). 상기해보면 안구가 습한, 지질한 일화는 지금은 친한 지인들에게 셀프 디스처럼 건네는 농담이 되었다. 늦가을 핀 뒤늦은 철쭉은 계절을 모르고 피어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랬다. 어린 나이에 겪는 실연은 그 시기에 맞는 아픔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나이에 사실상 남인 상대에게 겪는 실연에 대한 강한 호소는 주책맞다. 그 이후 같은 해에는 들어오는 소개팅을 거의 거절 않고 나가게 되었다. 회사 동기가 소개팅을 주선해주면서 말했다, 전쟁 같은 이 시장에 진입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예전에는 관계가 깊어지기도 전의 소개팅 상대의 학력과 연봉을 따져보는 사람이 세속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점점 따지게 되는 스스로가 보였고,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혼자다.


 이상했다. 딱히 모난 부분은 없는데 서로를 견주어보는 이 시장에서는 호감이 맞는 법이 왜 이리 쉽지 않은지. 현실적인 조건에 부가적인 요소로 ‘결이 맞는다’는 애매한 말로 다른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결의 일치는 단순한 취미, 성격적인 부분의 공통점을 넘어 자신의 퍼스낼리티를 긍정하고, 상대의 사람됨됨이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고자 하는 상대를 찾음에 있어 사회의 객관적 가치와, 인간성이라는 주관적 가치인, 두 가지 양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좋으면 스펙이 아쉬웠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가 괜찮다 싶으면 다른 하나가 들고 일어나는 상황 속, 끝없는 계산 속에서 만나는 사람 간의 관계에 한 발 내딛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다. 아마 두 기준을 어찌 적용해야 하며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맞아야 하는지 몰라서 지난 인연을 쉬이 스쳐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이유로 미니멀리즘을 위한 첫 시작으로 내가 앞으로 가져야 할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을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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