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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리니 Apr 17. 2023

벚꽃이 펴서 떠오른, 그날 차인 기억②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본 카텔란의 전시<WE> 속 사랑

아픈 데는 이유가 있다.


 상처는 통증으로 알아챈다. 증상이 발생하면 어느 곳엔가 문제가 생겼음을 짐작하고 환부를 찾게 된다. 기침이 잦으면 CT를 찍어 폐의 손상을 확인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이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다친 곳을 찾는 데에 있다. 사람 마음도 비슷할 것만 같다. 몸이 아프면 고민 없이 동네 병원을 가겠지만, 기분이 우울하다고 무작정 멘탈 클리닉에 빈번하게 드나들다가는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맥박을 스스로 재어보면서 상태를 진단하고는 한다.




 우선 작년에 소개팅을 강박적으로 해 온 증상이 어디에서 비롯 되었는지 확인해보자.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는 사람은 분리되어 있는 실재로서의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혼자 태어나 느끼고 생각하며 혼자 죽음을 감내해야하는 상황) 근원적인 고독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아가 있는 사람인 이상 이러한 결핍에 대한 고민은 피할 수 없고, 자신 외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어떠한 것을 갈망하게 된다고 했다. 그 대상을 일에서의 성취나, 쾌락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일시적인 도취로 삶을 영구히 채워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프롬은 사람 간의 사랑인 인간적 사랑이 고립감을 지워낼 수 있다고 보았다.


<카텔란, 사랑이 두렵지 않다>

 지난달, 미친듯한 티켓팅을 뚫고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WE>를 찾아갔다. 작가는 오브제, 사진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랑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프롬의 관점에서 보기를 시도했을 때는 그랬다. 그 중 ‘사랑이 두렵지 않다’는 제목의 코끼리 박제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


 ‘Elephant in the room’, 방 안의 코끼리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선뜻 말하기 힘든 주제를 일컫는 영어 숙어라고 한다. 숙어를 가시화한 작품이라고 카탈로그에 설명되어 있었다. 대화의 주제로 올리기도 꺼림직한 대상을 표현했다면 왜 굳이 사랑을 작품 제목의 소재로 언급했을까. 사랑은 소설, 영화 등 많은 매체를 통해 자유로이 표현되지만, 사랑은 마치 전기스위치처럼 의사에 따라 하고 말고를 자유로이 결정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TV 속 수많은 연애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에 갈리는 선호도. 자기소개 이후 크게 변화하지 않는 호감 순위는 외모와 직업이 사람의 매력을 결정함에 있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개팅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매력=사랑’이라는 공식이 사회 속 암암리에 성립되었다. 그 매력이 경제, 사회적 조건에만 한정되었다는 점에서도 문제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 공식의 군림 하에 상대를 선별하고 선별 당해왔다.


 대상에 치우친 사랑에 대한 관점은 <사랑의 기술>이 출간된 20세기 중반에도 만연했나 보다. 하지만 프롬은 사랑을 대상이 아닌 사랑이 갖는 생산적인 능력과 관계성에 초점을 두었다. 사랑이란 ‘나’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타인’으로 나아가는,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생명의 분명한 표현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성숙한 사랑은 대상 너머 세계를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상대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에 사랑은 자기본위적일 수가 없으며, ‘나’로 인해 상대의 마음이 감응한다면 사랑에는 관계성이 생겨난다. 부모, 형제, 애인 등 대상과 주체의 관계에 따라 발현되는 양상은 다르지만, 사랑에는 내면의 힘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 투영되는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사랑의 모습은 프리즘만 같다, 출처 printerest>


<카텔란, 아버지(왼), 어머니(오)>

 

 같은 전시회에 전시된 부모의 사랑은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어머니를 표현한 작품에는 희생적인 수도자의 모습이 있다. 비슷하게 프롬은 인간은 모성애를 통해 어머니에게서 자식으로의 일방향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처음 경험한다고 했다. 다음으로 사진 속 아버지의 발은 고단하다. 부성애는 어머니만큼 무조건적이지는 않지만 자식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삶의 길을 제시해준다. 이렇듯 우리는 받는 사랑을 통해 사랑을 체득하고, 주는 사랑으로 발전하며 더 나아가 눈 앞의 사람뿐만이 아닌 사람들을, 세계를 사랑하게 된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I love NY’, 911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오브제가 있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의 비극을 함께 추모하는 심리는, 사랑의 확장된 형태가 아닌가 싶었다.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일까. 누군가가 말했다. 요즘은 사랑의 대체제가 많다고, 이전 상대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 다음 상대에게는 그 아쉬웠던 점이 충족되있 지의 여부를 따져가며 찾게 된다고. 영화를 고를 때만큼이나, 게임 캐릭터를 선택할 때만큼이나 가벼운 편리함이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가시적인 세부요소를 따지고 형편에 맞춘 최적의 선택을 하고 난 후에 나는 과연 행복할 것 인가. 상대의 견적을 내보는 과정에서 내 자신도 소비재로 전락하며, 재봄의 과정에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게될 것임을 알고 있다.


 사업 파트너를 찾는 것이 아닌 이상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힘이 중요하다.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온 행동이 바른 표현이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헬스만큼이나 마음의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훈련, 기술의 숙련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면서도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속물적인 관점이 아닌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연습이 요구된다. 현재는 부족할지언정 끝없는 관심과 주위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집중과 인내도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미래에 대한 합리적 신앙을 가져보기로 한다.  


 프롬은 현대사회에서 내면의 결핍이 병리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며 소비지향적인 자본주의 속에서 성숙한 사랑은 실현되기 어려움을 인정한다. 하지만 세일즈맨도 영혼을 팔아가며 상품을 팔지는 않는다고 했다. 현실을 일정 부분 충족하면서도 제 주관을 지키는 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나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 대상적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내 현재와 미래를 사랑할 줄 아는 법이 필요하겠다. 나부터 사랑하자. 그래야 내가 만날 사람에게 덜 의존적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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