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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리니 May 08. 2023

인연을 잘라낸 당신에게①-2.

미니멀리즘화의 두 번째 논제: 나는 나로서 어떻게 존립할 수 있을까

나와의 인연을 잘라낸 당신에게


 다시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더 이상 그의 부재에 서운하지 않다. 한때는 차단과 무응답으로 쉽게 인연을 잘라낸 당신과의 관계에 허무감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점점 무디어져만 갔다. 아직 짧은 내 과거 속 그와 보낸 순간이 많았기에 일상에서 회상 사이사이 그가 자연스럽게 섞여오고 있음을 느끼고 이따금씩 그의 안부가 궁금할 뿐이었다. 오히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왜 타인의 사적인 영역에 그렇게 과도할 정도로 깊게 발을 들여놓았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린다와는 울었을 때보다 웃었을 때가 더 많았는데 기억나는 그의 모습은 파스타 집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빗겨보던 모습이 전부이다. 나로 인한 린다의 모습이다. 통쾌하지도 미안하지도 않다. 정의감에 불타오른 것이 아닌 지키기 위해 잃을 것을 각오하고 덤볐고 결국 오랜 친구를 잃었으니 통쾌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내뱉은 모진 말은 그 당시에 생각했던 최선의 가로막음이었으니 미안하지 않다. 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행동을 취했더라도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을 것이니 결과를 바꾸지 못한 채 우리 둘에게 대미지만 준 셈이었고, 나는 현명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당신의 균열은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결혼을 강행했던 그의 모습이 순한 평소와는 너무 반대라 그의 부모도, 나도 그가 주변을 내팽개친 채 사랑을 맹신한다고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강렬했던 의외의 모습 뒤에 그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상황 속에 있었음을 린다와 멀어진 지금에서야 떠올린다.

 

 남자친구가 긍정해 주는 본인의 존재에 그는 그가 이 세상에 있음을 느꼈고, 당장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나이 많은 애인에 위태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은 행동으로 자신을 인식한다던데, 그래서 밀어붙이는 결혼을 어떻게든 막으려 드는 자신의 부모와 친구에게, 안 그래도 불안한 자신으로부터 삶의 결정권을 빼앗기는 듯 한 반감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고집과 단절 기저에는 이러한 위협으로부터의 자기 보호심리가 있지 않았을까.

 

 현실 속 질문이 나를 찌르는 화살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익숙해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내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현실적인 질문을 하게 되고 돌아오는 대답에 얼굴을 붉히고는 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가? 쓸모를 묻는 질문에 자연스레 연봉을 떠올리고, 나는 일을 잘하는가? 의 질문에 회사에서의 평판을 조심스레 상기해 본다. 나는 대인관계가 좋은가? 의 질문에 지인의 양과 질을 따져보고, 나는 연인 간의 관계에서 어떠했던가? 에 대한 질문에는 상대를 쥐고 흔들 수 있었는지의 가능성 여부를 생각하게 된다. 사회에서의 가치기준이 스스로에 대한 물음으로 전이되어, 내 존재가치에 대한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내 자신을 향한 나의 의구심이 비를 내렸고, 내가 이러한 사람인지라 오래전부터 너의 마음 밑동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쩌면 문제는 너의 미련스러운 사랑이 아니었음을. 시간을 거슬러보면, 는 오랜 기간 미래를 준비하면서 직업에 자신을 정의해 온 지도 모르겠다. 고정해 놓은 도안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알았을 때 는 자신을 설명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집에 들어가면 마주하는, 취직은 언제 하느냐는 가족의 책망과 회사 험담을 하는 친구로부터 느끼는 괴리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자신에 대한 덧붙임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 남자를 휘두를 수 있을 만큼의 매력적인 여자로 자신을 찾았을 수도 있었다. 카페에서 내가 본 관계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오만한 표정에는 이유가 있었고, 지금 의 불행에는 맥락이 있었을 것만 같다.   


 나는 너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우리는 서로 눈앞의 아픔을 달래줬을 뿐, 남의 시선으로 자신을 난도질하는 생각을 막지 못해 각자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은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고 했다. 기대와 달리 나는 대단한 사람이 못되어서 옳다는 확신 하에 너의 행동을 저지만 했으니 네 존재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한 셈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나아가지 못했으니 어쩌면 지금의 멀어짐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나를 떠난 네가 소중하게 살았으면 한다. 성적이 더 좋고 취업을 일찍 했다고 내가 너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니었듯이 사람의 가치에는 외적인 이유가 없다.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었을 뿐 사실 네 존재는 항상 있어왔다. 네 일은 너의 가치를 산정하지 않고, 타인의 관계는 너를 정의하지 않는다. 네가 어떤 일을 하고 너의 곁에 누가 남아있든 그 무엇도 너의 가치를 훼손하지 못하니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밖의 시선에 네가 스스로를 낮춰보지 않기를 바라겠다. 


 너의 현재는 흘러보낸 과거의 응축이고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쌓여가는 시간에 대한 부담은 온전히 네가 가져가야 할 몫일 것이다. 지속되는 현재 속에서 동안의 을 아껴주는 선택을 하고, 그러한 삶을 아끼는 만큼 주변이 상처받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너를 나중에 네 곁에 있게될 누군가도 진심으로 아껴주기를 바라겠다 .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흔들리는 내가 마지막으로 네게 하고 싶은 말,

 

네가 행복하길 바래. 

 이 말에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너의 안녕을 바라는 나의 마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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