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삶을 떠올려 봅니다.
최근 일리아스와 함께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인데요,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강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함께 나누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 중간 부분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 병리적 상처를 정신 요법이나 정신 위생학적 방법을 이용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 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인간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즉,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 있어도 그곳에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쉽게 망각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얼마 전 링크드인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짧게 글을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한평생 방황을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때(주변 친척들의 말을 빌려보았을 때) 아버지는 본인의 미래와 현실 사이의 벽을 극복하지 못해서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셨던 게 아닌가 합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좋아하셨고 그림 그리는 걸 평생 업으로 삼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시절엔 다들 그랬듯이 당장 수익이 되지 않는 예술이라는 업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는 본인이 너무나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시면서도 가끔 집에서 그림을 그리곤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주로 풍경화를 그리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림을 그리시며 당신의 꿈을 조금이나마 펼쳐 보이려 하셨고 그 속에서 위안을 받으셨던 게 아닌가 합니다.
많은 이들이 본인이 하고 싶고 그리고 있는 미래와 현실 사이에서 방황을 하고 그 간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합니다. 대부분의 이들은 적당히 타협을 하고 현실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살아가고 있지만, 도저히 그 미래를 포기할 수 없고 아쉬움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이들은 결국 방황을 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즉 미래가 없기 때문에 현실을 도피하고 극복해나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그리는 미래와 내가 지금 살아가야 하는 현실. 그 두 가지가 일치하면 정말 좋겠지만 그런 일은 정말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초점을 맞춰서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언젠가는 원하는 목표, 삶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아닐까 합니다. 각박한 세상,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이러한 미래조차 그리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너무 피폐해지고 각박해지지 않을까 하네요.
미래가 없고 이를 그리지 못한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