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뜨개를 할 때에는 뜨태기를 만난 적이 없다. 뜨개는 그냥 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하면 되는 취미이자 내 삶의 즐거움 영원한 나의 친구라고 생각했다. 실과 바늘만 보면 설레고 두근두근했다. 엄마 또는 다른 사람들이 뜨개하는 모습을 보면 무엇이든 또 만들고 싶어졌다. 바빠서 잘하지 못했지만 다음 날 출근도 잊고 뜨개에 몰두했던 순간도 있고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고 버거웠을 때는 뜨개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식사 후 무념무상 앉아서 뜨개를 했었다. 그러다 보면 어지럽고 힘들었던 마음이 진정되고 안정되었다. 열정을 다해 뜨개 할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하는 뜨개는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뜨개를 일로 시작하고 나서는 1년에 한 번씩 뜨태기가 찾아왔다. 바늘도 실도 잡기 싫고 잡더라도 한코 한코 이어 나가는 게 너무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지난 기록을 보니 작년 이맘때에도 지독한 뜨태기를 겪고 있었다.
뜨태기가 오면 뜨개는 일절 하지 않았다. 수업은 해야 했기에 수업 시간에는 회원님들이 뜨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신기하게도 나는 뜨개가 하기 싫었지만 회원님들이 뜨개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있었다. 뜨개 자체에 싫증 난 것이 아니라 쉬어가라는 신호인 것 같았다. 수업 중에도 항상 쉽게 뜰 아이템 하나는 꼭 만들어 두는데 그런 거 없이 오로지 수업에만 집중했다. 회원님들 뜨개 하는 손을 구경하거나 수다를 나눴다. 그 시간도 나름의 매력과 즐거움이 있었다.
도대체 왜 뜨태기가 오는 것일까? 노력한 만큼 성과가 좋지 않을 때, 열정적으로 너무 쏟아내다 보니 멈춤이 필요한 상황일 때, 어려운 작품을 만들 때, 뜨개를 하는 과정에 실수가 많을 때 여러 번의 푸르시오와 함께 뜨태기가 오는 것 같다. 일로 뜨개를 하며 항상 부족한 자신을 채우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이 많았고, 늘 열정을 다해 에너지를 쏟아붓다 보니 에너지가 고갈되는 상황에서 오기도 했다. 아, 그리고 손목과 어깨의 통증으로 뜨개를 매 순간 즐기지 못하게 된 순간에도 뜨태기가 왔었다. 그래서 건강의 중요성을 더 깨닫게 되었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 몸이 무너지면 일상이 무너지고 마음이 같이 무너지고 슬럼프를 맞이하게 된다.
뜨개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나에게 뜨태기는 단순한 권태로움과 싫증이라기보다는 슬럼프 같다. 지루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다했기에 오는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 같기도 하다. 한 템포 쉬어가며 주변도 둘러보고 마음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잠시 내려두고 나도 주변도 돌아보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실과 바늘이 눈에 들어오고 뜨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슬럼프 극복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목표를 세워보기도 하고 잃어버렸던 열정을 다시 찾는다.
어느 정도의 휴식기를 가진 후 정말 뜨고 싶었던 아이템 중 빨리 완성할 수 있는 것 하나를 찾아서 뜬다. 완성을 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뜨태기는 사라지고 다시 뜨개를 즐기는 나를 만난다. 좋아하는 적당한 굵기의 부드러운 면사와 레이스 바늘로 한코한코 뜨는 매 순간을 집중하면서 다시 즐거움을 찾았던 날도 있었다. (다시 나에게 뜨개의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문어발로 어딘가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뜨다가 멈춘 뒤 다시는 뜨기 싫어진 아이템을 잡고 도안을 천천히 보면서 답답했던 구간을 넘기는 순간 다시 뜨개가 즐거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틀리고 어렵게 느껴지던 뜨개도 어느 순간 술술 풀리며 그렇게 나의 뜨개가 성장하기도 한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열정을 다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비하거나 성장이 느릴 경우, 너무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 실패와 실수가 잦은 순간에 슬럼프가 찾아온다. 조금은 힘들고 답답하기는 하지만 슬럼프를 잘 이겨내고 나면 한층 더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다. 슬럼프가 온 것은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니 재충전을 하며 도약을 준비하면 된다. 휴식을 취하고 자신을 돌보며 다시 작은 것부터 성취하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한층 더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기에 오늘도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잡아 본다.
뜨개도 삶에서도 슬럼프가 왔을 때 권태로움이 왔을 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시기가 지나면 더 나은 날이 올 것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절대 포기 하지 말자. 조금 느리더라도 내 뜨개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를 생각하며 무너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