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시간이 무려 "69"라는 끔찍하고 잔인무도해 보이는 숫자 때문인지, 수많은 언론에서 이미 '주 69시간제'라고 네이밍 해버린 제도가 온갖 비난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주 52시간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그렇다면 주 52시간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일을 얼마나 했을까? 놀랍게도 69와 별 다를 바 없는 '주 68시간'이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었다. 여기서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주 68시간 시절에는 전국의 근로자들이 노예처럼 일만 하다가 쓰러져 나가는 생지옥 속에서 우리는 살았던가?
대부분은 그때나 그때나 별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주 52시간이라는 리미트가 걸리며 더 일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뿐.
주 69시간제라는 프레임이 이미 걸릴 대로 걸린 이 근로 제도의 실체를 알아보자.
한 주에 69시간을 일하라는 말인가? (X)
이전에는 52시간만 일해도 되었는데 이제는 17시간이나 더 일해야 하는가? (X)
한 주에 69시간을 일해야만 비로소 쉴 수 있는가? (X)
총 근무 시간은 주 52시간제에 비해 늘어나는가? (X)
주 40시간을 일하고 최대 12시간까지 연장근무를 할 수 있다는 원칙은 유지되는가? (O)
회사나 개인 사정상 필요하다면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해도 이전과 달리 허용해 주겠다는 말인가? (O)
다음 달에 주어진 시간을 이번 주로 추가로 당겨와서 쓰고 다음 달을 그만큼 쉴 수 있는가? (O)
법적으로 반드시 쉬어야 하는 시간을 제외한 이론상 최대 근로 시간이 69시간인가? (O)
연속 근무를 하면 할수록 그 해 일할 수 있는 총량은 줄어드는가? (O)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감히 제안할 수조차 없는 법이 아니라, '근로'에 있어 조금 더 자유를 준 것이다.
상사가 일을 더 시킬까 걱정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본인 능력껏 해결하든 체념하든 그만두든 본인이 선택을 하면 될 일이지, 왜 본인 일 덜하자고 일을 더 하고 싶거나 일을 더 해야만 하거나 일을 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앞길까지 막으려 들까?
한국같이 R&D 첨단산업의 비중이 높은 나라는 업무 시간 자체가 9to6 규칙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형 프로젝트를 마쳐야 하거나 큰 계약 건을 따내야 한다면 그 기간 동안 쉬는 게 어딨고 노는 게 어딨는가. 잔업에 잔업을 이어 바짝 일해야만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많이 있다. 근로에 대한 제약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기업의 생산성 향상도 기대해 볼 수 있고, 이는 국익으로 돌아올 터이다.
일에 대해서는 일을 더 잘, 자유롭게, 생산성 있게 하도록 보장해 주는 방향이 옳지, 어떻게 하면 더 놀고먹고 쉬게 해 줄까를 고민하는 건 대체 뭘까?
본인이 선택한 직장이고 본인이 감당하기로 결심한 모든 조직 문화와 관계들은 본인이 책임지자. 본인이 일하기 싫고 상사에게 끌려다니지 않을 용기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 발목 붙잡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