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 있는 불륜? 영화 -화양연화 -
7월. 바깥은 습기와 열기로 한증막 같다. 이럴 때는 바깥에 잠깐만 있어도 숨이 막힌다. 3년 전 그날도 그랬다. 덥고 불쾌지수가 높은 어느 한 여름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수많은 불륜 이야기가 떠돈다 해도 절대로 내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남편의 불륜은 뜨거운 열기만큼 나를 불쾌하고 힘들게 했다. 그중 제일 불쾌했던 건 나는 곧 40대인데 상대여자는 아직 20대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이제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어질 만큼 늙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花樣年華 (화양연화)는 여기서 끝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랑이 끝나서 아플 때 또 다른 화양연화가 찾아올 수도 있는 모양이다. 영화「화양연화」는 배우자의 불륜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장만옥(첸부인)과 양조위(차우)는 그들의 배우자가 불륜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왜 불륜을 시작했을까 궁금해한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차우와 첸부인은 서로의 배우자로 빙의해 불륜장면을 연출하는 상황극을 벌인다. 그리고 그때 느낀 감정을 시작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불륜이 또 다른 불륜을 낳은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관계는 무협소설이라는 공통 관심사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깊어진다. 차우가 쓰고 있던 무협소설을 보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던 첸 부인이 하룻밤을 숨어있기도 하고, 급기야는 둘만의 집필공간까지 따로 마련하게 된다. 첸 부인이 차우의 뮤즈가 된 것이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더 이상 깊어지지 않는다. 첸 부인은 ‘우리는 그들과 달라요.’라고 말하면서 둘의 관계를 부정한다. 반면 차우는 결국 첸 부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고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차우는 끝내 혼자 싱가폴로 떠나게 되고 그들의 불륜이 가져다준 화양연화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영화에는 불륜의 과정을 기품 있게 표현한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그중 하나가 차우의 집필실에 드리워진 붉은색 커튼이다. 첸 부인이 은밀하게 차우의 집필실에 들어가고 나올 때 펄럭이던 붉은색 커튼은 차우와 첸부인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느낄 수 없는 열정을 잘 표현해 준장치가 된다. 비는 불륜의 한계를 보여준다. 우산 하나를 두고 같이 쓰지 못하고 비 오는 골목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힘들게 감정을 절제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첸 부인은 왜 차우에게 자신의 감정을 힘들게 숨겨야만 했을까? 이미 돌이킬 수 없음에도 차우에게 가는 것도 이혼을 하는 것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첸 부인의 마음은, 라디오에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남편이 신청한 ‘화양연화’라는 곡을 듣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잘 보여준다.
「화양연화」를 이야기하면서 불륜을 기품 있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불륜은 남이 하는 로맨스일 뿐 그 안에 어떤 기품도 아름다움도 없었으면 한다. 그저 인간이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한 처절하고 애처로운 노력정도가 더 적당할 것이다. 그래서 불륜은 멜로무비가 아니라 막장드라마가 더 어울린다. 그렇지만 나는 인어아가씨의 주인공 보다 화양연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상간녀의 머리 끄댕이를 잡는 대신 아직 나이 어린 아가씨니 불륜에 엮이지 말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충고를 했고, 아이를 생각해서 이혼만은 하지 말자 다짐하며 상담센터를 찾았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참고 있던 감정은 분명 분노와 슬픔과 좌절이었다. 그 마음 때문에 아이를 핑계로 끝난 인연을 쉽게 놓지 못했다. 그런데 상간녀가 남편을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잊지는 못할 것 같다는 말에, 미련 없이 이혼을 선택했다.
이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나와 같이 울어주고 힘든 일을 잠시 잊고 웃을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많은 일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죠.” 차우가 변명처럼 이런 말을 했는데 나도 그랬다. 남편의 불륜이 먼저였다고 내 감정을 정당화했고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라고 혼자 변명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확신이 없었다. 그 사람은 힘든 시기에 화양연화 같은 시간을 선물해 준 사람이었지만 그 인연을 계속해서 유지하기에는 만났던 타이밍이 나빴다. 그래서 이혼과 동시에 그 사람과의 인연을 정리했고 지금까지도 고마운 사람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다른 시기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가끔 상상해보기도 한다.
사랑은 삶을 화양연화로 만들어준다. 사랑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하지만 화양연화의 순간은 너무 짧다. 노력이 없는 사랑은 더더욱 그렇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약한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진실한 사랑이 뭔지 모른 체 순간적인 사랑에 눈과 귀는 멀고 비극적으로 끝나는 막장드라마나 화양연화 같은 이야기가 세상에 넘쳐 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