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정 Apr 17. 2024

검은 잉크가 새하얀 종이를 물들이 듯

#수필 4



  증오심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증오심이라는 것은, 아주 사무치게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감정을 느낄만한 사건이 제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저 또한 누군가에게 증오심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8개월을 함께 한 그녀를 떠올리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녀가 제게 저질렀던 사소하지만 무례했고, 가벼웠지만 무거웠던 실수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과거의 저는 화가 났었고, 현재의 저도 화를 느끼며, 미래의 저 또한 그녀를 떠올리며 화를 낼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저는 왜, 유독 그녀에 대한 증오심'만' 큰 것일까요.





  저의 유년기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약자였던 부모님은, 친구들과 친척들로부터 헌 옷을 받아오셨고, 식비를 아끼기 위하여 남의 땅을 빌려 -토지 소유자는 토지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경작을 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엄마는 지주의 대리 경작자가 되어 농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풀 떼기를 가득 키우셨습니다. 사계절, 정성스럽게 키운 풀 떼기로 한상 가득 채우셨고, 공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아끼기 위하여 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액 지원해 준다던 체육 고등학교에 강제 입학 시키셨죠.







  설상가상으로 지도자에게 그루밍 성폭행 -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신뢰를 바탕으로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대를 선별하여 이루어지는 성범죄. 신도나 미성년자, 고립된 사람, 성숙도가 낮은 사람들이 대상이 되며 피해자들의 욕구를 교활하게 해소해 줌으로써 본인에게 의지하게 만들고 피해자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도록 유도한다. 정신적으로 의지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범죄를 당하면서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을 당하는 바람에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만, 나날이 커져갈 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루밍을 당하여 사리분별을 하지 못했던 저의 미숙한 판단 -그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한심한 판단-을 적극 지지해 주셨고, 아내와 딸이 있던 지도자는 4년간 저를 성폭행하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켜 인간관계를 단절시켜 놓고는 2,000만 원의 합의금만 지불한 채 감형받았습니다.





  저는 21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뒤에서 합의금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에게 집착하고 있었던 저는 범죄자의 입을 통하여 합의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제 피해에 대한 약소한 합의금을 어머니가 전부 써버린 후였죠. 당시 주말 20시간 알바와 대학교 생활을 병행하고 있었던 저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식을 보호해야 할 부모님이라는 존재에게 너무 큰 실망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저는 파란만장했던 저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받아들였고, 저와 마찬가지로 미숙했던 부모님을 용서했으며, 인간 같지도 않은 범죄자 놈도 용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4개월이나 지났음에도, 그녀를 떠올리면 왜 화가 치솟는 것일까요. 저의 과거를 보아, 저는 관용을 베푸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제게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일까요. 기억은 미화된다고 하지만, 그녀에 대한 기억만큼은 시간이 흘러도 '악화' 될 뿐입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새하얀 종이에 검은 잉크가 서서히 퍼져 나가듯, 얼룩덜룩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와 공유했던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중 나쁜 기억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유감스럽게도, 범죄자 놈은 성공적으로 저를 사랑하는 연기에 성공했고, 어렸던 저는 진실된 사랑과 거짓된 사랑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대상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많이 사랑하고, 의지하며 기대하는 사람일수록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길 수 있는 것이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3차 피해를 받습니다. 1) 객관적 피해 2) 상실감 3) 긍정적 기억의 왜곡





  저는 이러한 과정을 어머니, 아버지, 범죄자에게 겪어 봤고 다음에 또 이러한 비극을 마주할 때 조금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었습니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바늘에 찔려봤든, 바늘에 찔리는 고통이 상쇄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처리하는 뇌부위는 같기 때문에 '타이레놀'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처럼, 정신적인 피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사실 저는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제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녀를 지켜봄으로써 제게는 없었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소 침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카리스마와 실행력이 남다른 사람이었으니까요.






  한동안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맞췄습니다. 저의 감정과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저의 시간, 돈, 에너지를 전부 갖다 받쳤지만 그녀가 제게 돌려준 것은 기만, 불신, 모욕, 비난, 슬픔이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존중하지 않았고, 저를 발판 삼아 타인의 인정을 받는 데 목말라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있어서 불편하고 경계해야 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와 만들었던 아주 적은 추억과 긍정적 감정의 기억들은 우리가 공유했던 아주 긴 시간 속에서 '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버린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속에서 한줄기 빛조차 잃고 말았습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제게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고,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 파편일 뿐입니다.





  그녀가 갑작스럽고도 무책임하게 자취를 감추었던 그녀의 생일날 -그녀는 평소에 외로움을 많이 느꼈고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다른 남자와 저를 데리고 여행을 갔던 것을 부모님에게 들켜서 강제 송환되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모든 흔적들을 지웠습니다. 그녀의 번호를 지우고, 그녀를 위해 사두었던 목걸이를 친언니에게 선물했습니다. 다음 날,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모조리 버리고 휴대폰 사진 첩을 정리한 후에, 그녀가 제 생일날 사주었던 9,000원짜리 싸구려 써지컬 팔찌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저는 그녀를 사랑했던 만큼이나 증오했고, 이 증오심은 어쩌면 그녀라는 존재가 제게 아무런 의미로도 남지 않을 때 소멸될 것입니다.

  






  

이전 03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