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3
안전지대. 아늑하고도, 편안한, 모든 것이 나의 통제 아래에 있는 완벽한 나만의 공간. 구름 모양의 비정형 거실 카펫에 드문드문 보이는 몇 올의 머리카락과 책장에 꽂혀있는 두툼한 책에 쌓여있는 먼지들, 라탄 빨래 바구니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나의 허물들과 아일랜드 형 수납 선반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 따위들, 싱크대에 남아 있는 물 때, 차마 지우지 못한 욕실 선반에 녹슨 부분들, 제 방 오른 벽에 고정해 두었던 줄에 걸려있는 귀찮아서 정리하지 않은 옛 애인 사진들.
이것들은 저의 허점이자, 나태한 인간성입니다. 인간은 본래 청결하고, 정리 정돈을 잘하며, 하루 루틴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경이로운 존재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오히려 무질서와 혼돈의 결정체. 오만한 인간이 아득바득 질서와 체계를 세우고,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노력들로 하여금 완성된 인간,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망합니다. 허점 없는 일상을, 모든 것이 완벽한 질서와 체계 아래 제자리에 놓여있는 것을, 본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요. 그러나 어쩌면, 사소하고도 번거로운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초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매일 빨래를 흰 옷, 검은 옷, 속옷, 수건을 분리하여 세탁하고, 머리카락이 떨어지자마자 돌돌이로 줍고, 쓰레기는 3일에 한 번, 음식물 쓰레기는 매일 버리고, 욕실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창틀 먼지와 책장 먼지를 비롯한 먼지 제거도 일주일에 한 번, 계절 지난 옷은 세탁 또는 드라이클리닝을 한 후에 수납함에 잘 정리하여 보관하고, 철저한 지출관리 및 식단관리까지. 이러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매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여 게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인간관계까지도 관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완벽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악착같이 해내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일상 유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 버리면 정작 본업에도 지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저 조금씩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나갈 뿐입니다. 그렇게 저만의 규칙과 질서가 존재하는 공간, 저의 집, 저의 방은 저만의 피난처이자, 꿈의 공간이고, 반드시 돌아와야만 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안전한 공간입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리워집니다. 방금까지 저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포근한 이불의 감촉과, 고요한 적막함, 은은한 나무향과 선반 가득 차있는 두터운 책들이요. 저녁에 노란 조명을 환하게 켜놓고, 한 손에는 볼펜을, 한 손에는 노트를 꼭 쥐고서 수필을 쓰는 그 소중한 시간들이요.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다가는, 정말 홀로 늙어 죽겠다 싶어서, 오래간만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단단히 준비하여, 단단한 길을 걷고 나와 초록초록한 카페에 들어섰습니다. 가벼운 지갑 속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는 카드 한 장을 꺼내어 저의 소중한 9,000원과 '딥코코아 스모어 쿠키', '아이스 카페라떼'를 교환한 후에 창 밖에 휘날리는 벚꽃 잎을 볼 수 있는 좌석을 독자치하며, 평일의 느긋한 오후 시간을 즐깁니다.
싱그러운 식물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다정다감한 연인들과, 은은한 인디노랫소리를 누리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형편없는 그림을 그리고, 주절주절 뜬 구름 잡는 글을 쓰는 속의 여유를 만끽하면서도, 저의 머리에는 어느새 '집'이 떠오릅니다.
아직 해가 질려면 시간이 멀었지만, 입 근처에 묻은 쿠키 부스럼을 스윽 닦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아, 이제 돌아갈 때가 됐어. 한동안은 밖에 안 나와도 되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