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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작가 Apr 10. 2024

이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야

#수필 1

  


  두렵습니다. 제가 가진 것들이, 한 순간에 좋았던 ‘꿈’으로 남을까 봐요.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다음 날 아침, 갑작스럽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니깐요. 남들은 저보고 극단적이라고, 비관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가진 것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아서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들이 있으며, 사지멀쩡하게 태어난 것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 다가 올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나약하고도 초라한 자아로는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을 절대로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깐요.





’ 정상‘ 범주에서 ’ 비정상‘ 범주로 넘어가는 게 ’한 끗‘ 차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이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어릴 적 저를 슬프게 했던 부모님을 용서했고, 최선을 다해서 저의 부족한 부분과 못난 모습을 용서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배우기를 선택했고, 최선을 다해서 이 한 몸 다 바쳐 벌 수 있는 대로 벌고, 모을 수 있는 대로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예쁘다고, 여러분이 있어서 힘이 된다고 말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최선 없이 맞이하는 결과는 필연적으로 후회를 남기거든요.



  저녁 늦게 저를 데려다주신 어머니가, 집에 돌아가시는 길에 사고가 날까 봐 노심초사하는 일이 너무도 잦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빨리 운전을 하기 위해 자동차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읍니다.



  가족들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까 봐, 유흥 -술, 도박, 담배, 이성, 사치- 에 일절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사실 유흥을 해본 적도 없고, 즐기는 성격도 아니긴 합니다만, 관계를 종잇장 찢듯이 찢어버리는 유흥은 여러모로 보나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내일 제가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아서 앞을 보지 못하게 될까 봐, 길을 걸을 때, 익숙한 공간에 갈 때, 익숙한 얼굴을 마주할 때도, 저의 동공은 쉴 틈 없이 바쁩니다.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친언니 얼굴에 있는 점을 유심히 본다던가,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한다던가, 인도 위에 깔린 도보블록을 세심하게 보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저의 귀는 언제나 열려 있고, 제 손은 제가 보고, 듣고, 느끼고 관찰한 것들을 모두 기록하기 위해서 매일 바쁘게 일합니다. 조금은 귀찮고, 때로는 힘들어도 세상을 전례 없이 투명하게 관찰하고, 느끼는 요즘의 ‘새로운 취미’는 저의 삶을 아주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커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세상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루 8시간을 일하고, 다음 날 서울에 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기 위해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4시 20분에 일어나서 어머니를 모시고 기차역으로 가는 1시간이, 


기차역에서 딱딱하고 차가운 나무 의자에 앉아 어머니의 사랑과 하소연이 적절히 섞인 아버지의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듣는 1시간이, 


어머니의 엉덩이가 아플까 봐 담요 두 개를 사 와서 하나는 깔아주고, 하나는 어깨에 걸쳐드린 후에 함께 차가운 공기를 견디며 ktx를 기다리는 20분이, 


어머니가 좌석을 헷갈리지 않고 잘 찾았나 확인한 후에, 다시 제 할 일 하러 돌아가는 1시간이 저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저의 마음을 달래주었으며, 어머니를 향한 제 마음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비록, 200,000원의 생활비 중 기차값, 담요 값으로 4/1 이상을 지출했지만, 지금 못 해드려서 나중에 후회할 바에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올라가는 서울 길, 이모할머니를 뵈러 함께 가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머니는 그곳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저도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토록이나 피곤하고, 비겁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 순간 최선을 다해서 다가 올 비극 앞에 무릎 꿇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운이 좋았고, 충분히 사랑받았으며,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음에 감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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