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
누군가 내게 말했다.
“선영 씨는 대부분의 글이 힘들 때 쓴 글 같아요.”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쓰는 순간은, 찰나의 생각을 기록해야 하는 순간이거나 또는, 요동치는 감정 상태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을 때라는 것을. 그래서 대부분의 글들이 다소 차갑고 딱딱하다. 글을 쓸 때의 나의 기분은 다운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이유는 그 행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혜보다도, 내가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과, 얻은 정보에 집중할 때, 몰입할 때 나는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생각을 하지 않고 육체노동만을 하며 흘려보낸 하루에서는 뿌듯함이 아닌, 가학적인 자기 비난이 이어지고는 한다. 이미 지쳐버린 몸뚱어리인데도, 잠을 한숨도 안 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기도 하고, 나를 향한 비난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이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런 나의 행동은 아마도 이미 너무 지쳐버린 틈을 타, 애써 감추고 있던 나에 대한 불만이 표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돈만 벌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돌아가며 만나며 시간을 보내어서도 안 된다.
돈과 관계로 충족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글쓰기와 독서는 내가 존재해도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매개체로 느껴진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었다는 감각. 이것은 어제보다 몇 만원 더 늘어난 계좌 잔고를 통해 충족할 수 없다. 오로지, 더 풍부해진 생각, 늘어난 지식, 경험에서 충족된다.
최근에 나는 참으로 거만했다. 그리고 겸손하지 못했다.
편하다는 감각은, 타인과 공존할 때 나를 예측하지 못했던 위험에 몰아넣을 때가 있다. 내가 보인 거만한 태도와 겸손하지 못한 태도는 타인이 불쾌함을 느낄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내 행동으로 하여금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될 때,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그리고 후회한다. “나에 대해 드러내지 말걸. 괜히 기대치만 높였어.”
피곤하고 힘이 들 때 내면 상태가 ‘심신미약’ 상태에 들어서면, 타인이 뱉은 아주 가벼운 말 한마디가 송곳이 되어 귀를 찔러버린다.
나의 세계관이 아주 작게 축소되어 버려서, 타인의 세계관이 끊임없이 내 세계관을 공격하고 억압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 대한 경멸과 비난, 환멸로 이어지고, 현재 내 상태가 최악이라는 것을 비로소 인지하게 되면 빠른 시간 내에 잠을 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 모든 과정을 “아 내가 피곤해서 예민하구나”로 함축해버리는 것이다. 사실 이게 맞긴 하다. 본래 나는 타인과의 교류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인데 컨디션까지 안 좋으면 그 강도가 몇 배 강해진다.
분명 내일의 나는,
“아 너무 행복해“ 하며 오후 7시까지는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또다시 심신 미약 상태에 들어설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인 듯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또다시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고립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글을 쓰니 마음 한 편이 가벼워지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내일의 나는 겸손함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