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있냐? 집은 있냐?
“You live in an apartment? 아파트에 살아?”
“Nope, house. 아니, 집에.”
차는 있냐, 집은 있냐?
한 채에 수십억까지도 하는 한국 아파트와는 달리 미국에서의 아파트는 오로지 월세 개념이다. 집(house)에 산다는 것은 물론 월세도 있지만 대부분 모기지 대출을 끼고 집을 소유하는 개념이다.
“Rent or you bought it? 렌트야? 산 거야?”
“I own it. 내 집이야.”
호텔에서 청소하는 첫날, 점심시간에 처음 만난 하우스키퍼 엘레나(Elena)는 이것저것을 아주 솔직하게 물었다.
“You drive? Have a car? 운전해? 차는 있어?”
“Yes, I commute with my car. 어, 내 차로 출퇴근해.”
엘레이나와의 대화가 아주 자연스럽지만은 않았다. 엘레나는 영어가 서툰 멕시칸 친구였다. 영어가 서툴수록 질문이 짧고 단도직입적이다. 이 정도 언어/문화적 차이는 이제 어느 정도 적응했는데, “집이 있냐, 차가 있냐” 같은 질문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집도 없고, 차도 없는 것처럼 보이나?”
나는 왜 불행한 거지?
집이 있고 차가 있는 것이 매우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살아온 지가 9년이 흘렀다. 미국에 와서 8년간 지지리도 배고프고 가난했던 유학생일 때가 있었다. 결혼한 애엄마가 공부를 한다는 게 그렇다. 이유 없이 죄인이 되어 마음과 몸이 굶주린 유학생활은 졸업 후 종신제 교수가 되기까지 지속되었다. 어느새 졸업을 하고 교수가 되면서 이런 질문이 당황스러울 만큼 월세생활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온 것이다.
지금은 골프장에 집이 있고, 이 촌동네에서 보기 드문 BMW를 끄는 교수이다. 솔직히 겉으로 보기엔 누가 봐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근데 나는 왜 불행한 거지?"
분명 행복해야 하는데 말이다. 내 행복은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만 같아서 지금 불행한 것이다.
무언가 더 열심히 하고, 더 많이 성취해야만이 행복이라는 종착지에 이를 것 같아서 말이다. 그 종착지에 도달할 때까지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다.
"엘레나, 불편하고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해줘서 고마워."
행복의 종착지
나는 교수생활에 많이 지쳐 있고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잠시 잊고 살았다.
행복의 기준을 어느 누구도 정해주지 않았는데, 내 행복의 종착지를 너무 멀게 잡아놓지는 않았는지.
왜 스스로 수많은 정거장을 생성해내야만 했는지.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행복이라는 종착지에 이미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정거장 없애고 보니 종착지네
교육학에서 학생들의 개인차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의미에서 절대로 한 학생을 다른 학생과 비교하지 않는 철칙이 있다. 비교는 학생의 지난달과 이번달,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며 개개인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분석할 때 필요하다.
내가 타인과 비교를 하자면 더 좋은 집, 더 비싼 차, 더 많은 연구성과를 내야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
과거와 나를 비교하자면 나는 그간 참 열심히 살았고,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었다.
생각해 보니 행복해지기 위해 더 이상의 정거장은 필요가 없다. 종착지에 거의 다 온 듯하다. 딱 한정거장이 남았다면 은퇴하고 남편과 같이 살아보는 것이다. 여태껏 달려왔으니 이제 숨 좀 고르고 슬슬 종착지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행복 종착지를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혹시 지금 이미 많은 것을 갖춰놓고 살면서도 행복하지가 않다면
누군가와 비교해 쓸데없이 많은 정거장을 생성해놓지는 않았는지.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 이 글은 <나에게 솔직해질 용기>에 담긴 에세이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