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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여름 Sep 30. 2024

동반 길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내가 회사를 옮기고 얼마 후 남편도 같은 회사로 이직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시작했다. 혼자 지낼 때는 쾌적하고 부족함이 없던 1.5실 원룸은 남편의 살림이 더해지니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끔 다투었던 이유도 그 좁은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결혼 후에도 이 방에서 지내며, 한 푼이라도 더 모아 집을 얻어 나가면 어떻겠냐 조언했지만, 나는 결혼 예정일이 정해지자마자 새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근 전세 8500만 원에 작은 주방 겸 거실이 있는 투룸을 찾았다. 월세를 내야 했던 1.5실에 비해 경제적이었고 큰 방을 거실로 사용하고 작은 방을 침실로, 작은 주방 겸 거실은 주방으로 사용하면 신혼부부에게 딱 맞았다. 그런데 문제는 경매 중이었던 1.5실의 보증금을 받는 일이었다. 나는 그 집을 소개한 부동산뿐만 아니라, 많은 부동산에 적극적으로 이 매물을 내놓았고 경매 중인 집에 들어올 멍청한 임대인은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마음을 졸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집은 원래처럼 1000만 원에 50만 원이라는 임대료로 세입자를 구할 수 있었고 나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집주인과 처음으로 만났다. 부동산에서 만난 집주인은, 선입금한 계약금 일부를 포함한 3900만 원의 보증금을 계좌로 이체했다. 그리고 나머지 잔액 100만 원을 천 원 지폐 몇십 장과 비닐에 담은 동전으로 준비해 테이블에 꺼내어 쏟았다.


세어봐, 근데 새댁이 뭘 그렇게 조바심을 내고 의심이 많아? 알아서 나갈 집인데? 보증금 조정해 달라고 해서 말도 안 되게 조정까지 해줬건만, 하여튼. 쯧.


화장을 짙게 한 60대 초반 임대인이 멸시를 담은 눈빛으로 쏟아놓았다. 테이블 위에 흐트러진 동전과 지폐를 남편과 나누어 세며, 생각했다. 부동산 공부를 해야겠다. 그리고 내 집을 사야겠다.


결혼 후 신혼 생활을 눈 뜨고 잠들 때까지 심지어 꿈에서도 일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채울 정도로, 우리는 일에 빠져 있었고 나는 서른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에너지 소진이 왔다. 체력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대상 포진에 걸렸고 병원에서는 절대 안정을 권고했다. 나는 일정 기간 휴식 후 회사로 복귀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그 시기 남편의 가까운 친척이 젊은 나이에 급격히 병이 퍼져 세상을 등지는 일이 있었다. 우리 이러다, 죽어. 남편은 그만큼 우리 그때 상태를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 시기 가족을 떠나보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성찰해 보는 시기였다고 했다. 남편은 우리의 치열한 삶을 돌아보고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여유를 배우자며, 해외 살아보기를 제안했다. 우리의 신혼여행지 하와이면 어떻겠냐고.


경력에 대한 열정과 목표는 여전했지만 새로운 경험과 도전은 늘 마다할 이유 없이 날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 뭐 직장 1년 쉰다고 문제 될 게 있겠어? 나는 오랜 고민 없이 그의 제안에 동의하고 어학연수를 준비했다.


당시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비자 발급에 폐쇄적이었다. 특히 결혼한 부부가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동반 학생비자를 허가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목적이 불순하다는 의심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그 목적지가 하와이라는 점도 의도를 의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 첫 번째는, 건강 회복과 여유 찾기였기에 하와이는 최적의 섬이었다.      


학생비자는 유학 자문 업체를 통해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병가로 시간적 여유가 있던 나는 미국 학생 비자 발급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했다. 직접 수집하며 느낀 건, 아무리 미국 유학 비자 발급이 어려운 시기라고 해도, 명분과 근거가 분명하다면 돈을 쓰러 오는 열정 넘치는 학생을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학생 비자를 승인받기 위해서 몇 가지 중요한 심사 포인트가 있었다. 먼저, 학업 계획이 명확해야 한다.


학생 비자의 발급 기간은 최대 5년이었지만, 어학연수를 위해서 5년간 체류하겠다는 계획은 영사관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니다. 적정 기간(1년 내외)의 학업 계획을 세우고 연수할 대학 또는 아카데미의 수강 등록증을 갖추어야 한다. 또 어학연수를 명분이 설득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과 직접적 연관을 드러낼수록 좋다. 또 연수 후에 미국에 체류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 재산과 소득 증빙 등을 통해 내가 미국에 체류할 이유가 없는 사람임을 증빙하는 것이 좋다. 그간 직장 생활을 통해 모은 전 재산과 청약 통장, 소유한 자동차 등의 모든 재산이 근거가 될 수 있다.


 나는 유학원 비용을 줄이고 스스로 영사관의 허가를 받기 위해 모든 서류를 직접 준비했고 요구되지 않았던 영문 학업 계획서까지 준비했다. 그렇게 빠짐없이 서류를 제출하고 영어 인터뷰까지 무사히 끝냈다.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한 학생 비자 허가 인터뷰라는 취지에 따른 질문이므로 모든 질문은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영사관의 승인이 떨어졌고 우리는 하와이로 떠났다.     


우리의 목표는 1년 살기였고 그 예산은 6000만 원이었다. 그만한 예산으로 물가 비싼 하와이에서 두 사람이 지낼만한 쾌적한 숙소를 얻기는 당연히 무리가 있었다. 우리는 숙소 비용의 한계선을 정하기 위해 1년 살기 예산을 쪼개어 계산했다. 학생 비자를 받았던 나는 하와이에서 가장 저렴한 어학원을 등록했다.


남편은 동반 비자로 입국했지만, 어학원을 다닐 계획이었고 말을 배우기 위해 같은 어학원은 배제했다. 두 사람의 어학원 비용을 제외한 4000만 원으로 1년을 생활해야 했고 하와이의 비싼 물가를 생각하면 외식을 전혀 하지 않아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예상해야 했다. 역으로 계산하면 숙소 비용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비용은 월 140만 원 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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