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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여름 Oct 02. 2024

이상한 집 구하기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집을 구하기까지 첫 이주 간은 한인 하우스 민박에서 지냈다. 화려한 와이키키와는 또 다른 하와이를 담고 있는 로컬 숙소였다. 그 집에는 한국말로 종일 인사를 하다가 가끔 욕을 하는 앵무새가 있었다. 화장실이 포함된 방을 빌린 것이었으나 방문을 닫고 지낼 수는 없었다. 집에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면 견딜 만한 곳이었다. 호스트는 친절하다가도 갑자기 냉랭한 태도를 보였는데 그의 주변에서는 낮에도 술 냄새가 났다. 미국 세무사 시험을 위해 장기 숙박 중인 학생들의 긴장감 섞인 예민함도 느껴졌다. 편안함이라고는 느낄 수 없었던 임시 거처에서 짐을 풀 겨를 없이 이른 시일 안에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삼십 분 이상씩 연착되는 The bus를 타고 매일 호놀룰루 시내를 오갔다.  

    

우리는 먼저 한인 신문 교차로를 통해 부동산 임대 정보를 구했다. 신문 광고에서 몇몇 집을 추렸고 그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을 골랐다. 2인 기준 숙박비는 아파트 스튜디오(원룸) 렌트 기준 1300불 정도였다. 예산 범위를 초과했지만, 유틸리티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우선 집을 보기로 했다. 집을 보러 가는 길, 민박집 호스트는 집을 볼 때 최대한 화려한 복장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는 팁을 건넸다. 집주인에게 월세를 밀리지 않고 살 충분한 능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호스트의 조언대로 내가 가진 유일한 명품 가방을 메고 집을 찾아갔다. 한국인 이민자였던 임대인은 우리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지금껏 많은 사람이 다녀갔고 1500불을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당신네 커플이 아주 마음에 든다이사를 오면 바닷가에 있는 우리 집에서 바비큐 파티도 하자면서 인심 좋게 당근 주스까지 내어 주었다. 그는 원하면 집에 있는 모든 집기를 제공하겠다는 호의를 보였고 우리는 계약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집주인은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보고 연락 달라며 오히려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방해되지 않는 시간을 고려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춘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저희집 보고 간 학생 부부인데요.” 휴대전화 너머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누구라고요하며 전화 건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태도였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려 하자, 지금 내가 바쁘니까 다시 이따 통화해요. 하고 전화가 끊겼다. 불길함이 찾아왔다. 


두어 시간 뒤 전화가 왔다. 그는 그래누구시죠? 하며 통화를 시작했다. 저 어제 집 보고 온 학생 부부인데요집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하고 싶은데요오후에 뵐 수 있을까요? 그러자, 전화기 너머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학생 부부면 1300불이 너무 부담되지 않겠어요나는 월세 밀리면 정말 못 참아요.라고 했다. 


그 신경질적인 태도에 욱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감정을 누르고 대답을 이어갔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저희 돈 충분히 있고요절대 늦을 일 없게 할게요그러자, 집주인은, 학생 부부가 한 달에 1300불씩 집값에 쓰면 되겠어요? 거듭된 무례에 내 얼굴이 점점 붉어지자 남편이 전화를 돌려받았다. 남편이 정중한 태도로, 월세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라고 설득하자, 집주인은, 사실은 자기가 조카에게 집을 넘기기로 했다미안하다. 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민박집 공동생활에 여러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집을 얻어 나가고 싶었지만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후 몇몇 한인 교포들의 스튜디오, 하우스 공유 등을 찾아보았으나 대부분 그 집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나는 이럴 바엔 얼마 되지 않는 한국인의 집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정식 부동산에서 집을 찾아보자고 했다. 


미국에서 영어를 못하고 신용도 없는, 외지인이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영어는 대면형 보디랭귀지로, 신용은 준비해 간 서류들로 대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민박집 호스트에게서 정보를 얻어 하와이 전체 부동산 정보가 올라오는 Star Advertiser이라는 유로 일간지를 샀다.


정해진 예산 내에 학원과 마트가 가까운 안전한 곳으로 한정하니 조건에 맞는 집은 2, 3개 정도로 추려졌다. 그 집들의 광고 주체는 Oishi Property Management였다. 호스트는 오이시히가 유학생들에게 까다롭기로 소문났고 수수료만 챙길 거라며 만류했지만 우리는 일단 찾아가 보기로 했다. 


I’m Looking for a rent. 

Yes, Come in. 


하와이의 일본 부동산에서는 한국에서의 경험과는 달리 체계적인 사무실 분위기가 났다. 회사 면접 대기보다 더 떨리는 시간이었지만 아닌 척 자리에 앉았다. 기다리는 동안 유일한 명품 가방에서 꺼낸, 한국에서 준비해 간 재정 서류와 경력 증명서를 모두 꺼내어 놓았다. 담당 매니저가 우리 앞에 앉았고, 나는 미리 준비해 간 말을 읊었다. 집을 구하고 싶은데우리는 학생 비자로 미국에 왔다미국에는 신용이 없다하지만 우리에겐 돈과 한국 직장재산이 있다집을 구할 수 있겠냐


그러자 부동산 매니저는, 너희가 원하는 집이 있냐, 물었고 나는 신문을 펼쳐 표시해 둔 집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는 날짜를 적어주며 Shown Day 정각에 맞춰서 오라고 했다또 렌트를 신청하려면 1인당 20불의 fee를 지불해야 하는데둘이 보면 40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빈집을 보는데 날짜를 정해두고 집을 보기만 해도 비용을 내야 한다니. 나중에 안 사실은 미국에는 집을 보여주는 날을 정하고 임차인 후보들이 함께 집을 본 후 신청서를 작성하면 집주인이 최종 임차인을 선택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shown day 집을 보러 온 임차인 후보는 우리뿐이었다. 경쟁자가 없으니 성사 확률이 높아졌음에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오이시히 매니저는 우리에게 두 개의 집을 보여주었다. 


두 집은 모두 멀리 바다가 보이는 바다 전망이었고 월 50불 정도 임대료 차이가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계약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매니저는 원하는 집을 골라 1, 2위 신청하면 임대인의 심사를 통해 결정된다고 했다. 만약 집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집주인이 거절하는 경우우리는 추가 수수료 없이 다른 집을 보고 렌트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다음날 우리는 임차 신청 서류와 수수료, 한국에서 준비한 재정 서류, 신분증 등 필요 서류를 제출했다. 수수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 우리에게는 1, 2순위를 지정할 수 있는 선택권까지 있었고 이후 계약 성사에 대한 수수료도 없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담당 매니저는 다음날 전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경쟁자도 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았지만 이전에 불발된 경험으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이시히의 연락을 받았다. 계약서를 쓰기 위해 은행 체크를 만들어와라는 내용이었다. 지금껏 그 어떤 합격의 기쁨보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계약 과정도 치밀했다. 오이시히는 집 관리에 관한 규약과 현재 집의 상태를 녹화한 DVD를 보여줬고 수십 장 서류를 꺼냈다. 임대를 종료할 때 처음 상태 그대로 집을 비우지 않으면 예치금을 차감한다는 경고도 있었다. 우리는 공동 계약자였으므로 모든 서류에 함께 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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