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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여름 Oct 07. 2024

그래도 난 여유보다 여름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하와이 생활이 익숙해지자, 제한된 소비로 인한 불편이 불만으로 이어졌다. 매주 걸어서 손가락 벌게지도록 무거운 생수병을 옮겨야 한다거나 삼십 분은 족히 기다려야 하는 The Bus, 최저 생활비로 살기 위한 원치 않는 부지런함, 경제적 여유 없이 일 년을 버텨야 하는 삶에는 행복이 자리하기 비좁았다.


원하는 것은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한국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고 남편과 다툼이 잦아졌다. 다툼의 원인은 돈이었다. 돈을 아끼려고 걷다가 짜증이 나고, 돈을 아끼려고 선택한 음식 맛에 기분이 상했다. 하와이에서 만난 한인들은 남편에게 취직을 권하기도 했다. 남편은 여기 일하러 온 게 아니라며 단호히 못을 박았고 나는 고민조차 없는 그가 야속했다. 일 하다 보면 기회가 생겨 여기 있는 다른 한인들처럼 파라다이스 하와이에 정착할 꿈도 꿔 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건 남편의 꿈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1년을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남편의 생각은 확고했다.


나는 여러 정보를 얻었던 한인 커뮤니티에서 아르바이트 게시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하와이에서 F-1 학생 비자로 일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런데 관광지다 보니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다 한인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찾아냈다. 당구장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는 잘 몰랐지만, 게임비를 계산해 주고 테이블을 치우는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그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제야 나의 진지한 고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자신이 일을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이후 이웃이었던 하와이 이민자는 남편에게 한국인 남성을 필요한 일들을 소개해 주었다. 한국 여행객들의 운전 가이드 같은 일이었는데, 남편은 고사했다. 자신은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벌이에 대한 갈증으로 나는 또 다른 출구를 찾아냈다. 하와이 지사 한인 신문사의 기자 자리였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 제의를 받았고 신문사 편집장과 만났다. 한 시간 이상 긴 심층 인터뷰 후 그는 나에게, 취업 비자가 아닌 J 비자를 이야기했다. J 비자로 몇 년간 실습 수당을 후원받고 일하면, 이후 평가에 따라 취업 비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J 비자를 받고 나면, 남편이 동반 비자로 일을 할 수 있으니 생활비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 옵션이었다.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지금 내가 저 제안을 받아들이면, 어학연수를 중단하고 신문사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2년간 최저 시급에 미치지 않는 실습 수당을 받으며 일하다 취업 비자로 전환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게다가 생계를 위해서는 남편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한다. 괜찮은 걸까.


하와이에서 컴퓨터 기술직으로 사는 또 다른 한국인 이민자는 남편에게 하와이 대학 시스템 기술자 포지션을 소개해 주었다. 계속해서 고사하던 남편은 하와이 신문사 면접 후 고심하는 나를 보고 지원을 결심했다. 남편의 면접을 지원하고 싶었던 나는, 아마존에서 바로 코딩 인터뷰 책을 주문했고 각종 인터뷰 자료를 모아 인터뷰 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연습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하지 않았다. 네가 너무 원하니까 면접을 보긴 보겠는데, 그 이상은 없다. 나는 여기 살려고 온 게 아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지만 내키지 않는 마음을 움직일 방법은 없었다. 나의 갈팡질팡한 마음을 단념하게 할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었을까.


남편의 진심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면접을 준비하며, 당시 우리에게 큰 지출이었던 100불이 넘는 알로하셔츠를 샀다.

그렇게 인터뷰 날이 되었다. 매일 같았지만, 더 파란 하늘, 싱그러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귤색 알로하셔츠를 입은 남자, 드넓은 하와이 대학 교정은 참 아름다웠다. 인터뷰 시간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고 남편은 질려버린 속마음을 감추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면접장을 나왔다.


나와 남편은, 여유를 목적으로 하와이 1년 살기를 선택했지만, 이방인의 낯섦이 사라질 무렵 나는, 휴양도, 학업도, 하와이의 천국 같은 날씨도 오롯이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름드리나무의 커다란 그늘을 보고도 쉬지 못하는, 앞으로 가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놓지 못하는 뜨거운 태양 아래 순례자 같았다.


하와이의 시간은 그렇게 끝나갔다. 기약된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짧지만, 추억이 깃든 세간살이를 하나하나 벼룩시장에 내놓았다. 그 수익금으로 처음 차를 대여했고 호놀룰루 섬을 일주했다. 우리는 전문 청소 업체까지 동원해 스튜디오를 완벽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는 마지막 일주일간 호사스러운 호텔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버티려고 하지 말고 3개월만 신나게 놀다 갈걸. 하지만 나는 안다. 타지에서 결핍을 느끼며 서로를 미워하고 또 의지하고 1년을 버틴 경험은 우리를 어느 부부보다 단단하고 진하게 결속했다. 또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삶의 근육을 길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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