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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여름 Oct 04. 2024

우리의 진짜 신혼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그렇게 1100불이라는 합리적 가격에 전기, 수도 유틸리티가 포함된 하와이 바다 전망 스튜디오를 계약했다. 알라모아나 센터가 앞을 가리긴 했지만 우리 집은 일출이 아름다운 남동향 오션뷰였다. 태양이 뜨거운 하와이에서는 남향, 동향집이 선호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하와이의 태양이 우리 집에 가득했고 햇살에 눈을 뜨면 알라모아나 공원을 달렸다.

바쁜 일정 속에 숙제처럼 쌓아놓고 해결했던 결혼 준비와 신혼여행, 그리고 신혼집 정리를 하와이에 와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40년 이상 연식이 되었지만 관리가 잘된 중후한 건물에 빈 도화지 같았던 새하얀 스튜디오에 채울 모든 세간살이를 함께 보러 다녔다. 

이케아가 없는 하와이는 가구가 비쌌다. 우리는 한 달을 기다려 아마존 무료 배송으로 100불짜리 침대를 샀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가구들은 오래 걸려도 아마존 최저가 무료 배송 쇼핑을 이용했고 그 밖에 세간은 생활용품 할인 매장(로스)을 밤낮으로 드나들며 채워 나갔다. 작은 스튜디오가 하나하나 채워질 때마다 신혼집을 채우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물가가 비싼 하와이에서 외식은 거의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주식은 아이러니하게도 건강한 수제 햄버거와 스테이크였는데, 가장 가성비 좋게 사들일 수 있는 것이 다진 고기와 덩어리 고기, 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그것들을 냉동 소분해 아침저녁으로 요리해 먹었다. TO-GO 방식의 포장 식사도 가끔 했지만, 평소에는 한인 마트에서 파는 점심 도시락이면 감사했다. 한식에 대한 그리움이 점차 커졌고 나의 요리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간단한 불고기를 시작으로 한국식 치킨, 보쌈, 김치까지 만들어 먹었다. 가장 먹고 싶었던 밑반찬이었던 깻잎을 하와이 생활 6개월 만에 마트에서 발견했는데 그 순간 기쁨은 잊을 수 없다. 

학생비자의 목적이었던 어학연수도 잘 해내고 싶었다. 우리는 각자 어학원 생활에 적응했고 서로의 어학원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 홈파티를 함께 하기도 했다. 

30년간 극복하지 못한 영어 울렁증을 이겨내고 싶었다. 학생 비자 대상자는 일 4시간 이상 학업을 이어가야 하는데 내가 등록한 어학원은 4시간 이상 8시간까지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었다. 듣기에 어려움을 느꼈던 나는 수강 시간을 8시간까지 늘리고 어휘 수준이 높은 선생님 수업을 찾아들었고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수업은 세 번까지도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점차 내 영어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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