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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Aug 25. 2023

사랑하기란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이유>의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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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한때 국민가요 같은 노래가사도 있었고, 중학교 때 나에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를” 하며 헤어짐에 아쉬워 내 인생을 위해 간절한 소망을 빌어주셨던 선생님도 계셨다. 이러한 세상의 축원에 힘입어 사랑받는 것이 궁극의 행복이라고 믿어왔지만 그럴수록 사랑은 도망갔고 나는 늘 사랑의 뒤꽁무니만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갈증과 허기에 메말라갔다.  사랑받지 못해서 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 속에 있을수록 더 크게 느껴진다. 혼자 쓸쓸한 것보다 그 외로운 혼자가 많은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이 쓸쓸함을  더 잔혹하게 한다.    


외로움은 때로 몸과 마음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절여져서 아무런 감각이 없는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내게 온 모든 것은 나에게서 튕겨나갔다. 그런 감정들이 오히려 목석같은 나를 보고 더 놀라서 도망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외로움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혼자만 감당해야 할 선고처럼 준엄했다.   굳건한 창살 속에 갇혀 어떠한 외침도 나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톨스토이의 글을 빌리지 않아도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사랑임에 틀림없다.  숨을 쉰다고 사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랑의 근원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지만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했던 백설공주의 새엄마도 자신을 가장 사랑한 사람의 결말은 한결같이 비극적이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충분한 사랑이 있었다. 붉은 저녁놀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 철없는 어린아이를 보며 그 순진무구함에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 그리고 그때 집 없는 길 위의 고양이에게 내가 느꼈던 애잔함. 그런 마음들을 나는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너무나 사소하고 하찮아서 별것 아니었던, 흔하고 흔해서 시시하고 재미없을지도 모르는 그저 그런 감정들이 한순간 반짝 별처럼 빛나고 사라지는 그때 우리는 사랑을 하였다. 나를 지나간 그 순간의 것들과 나는 사랑을 하였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더 많이 나눌수록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말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다 싸안고 흘러간다.  그러나 별반 달라진 것은 특별히 없다.  문제는  모습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내 앞에 얼씬거리고 정답은 언제나 요원하다.  물론 사는 것은 진폭이 있는 사인(sine) 곡선이라 나쁜 날이 지나면 그렇지 않은 날도 있어 나는 그 한 지점을 지났을 뿐일지 모르고, 아니면 길고양이가 알려준 나의 외로움에 대한 묘책(!) - 기묘한 방책이자 고양이의 방책이기도 한 - 이  내 병에 잘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더 무언가를 받지 않아도 이미 다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은 받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랑을 받는 것이 어려웠던 것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 적어서였을까. 무언가를 줄 때는 받을 일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주기 전에 받을 일이 먼저 생각난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리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주기만 하여도 이미 받은 것과 같은 것. 그래서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나 받을 일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그저 주고만 싶은 마음, 되돌려 준다고 해도 받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준 그 마음만으로 이미 충분히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마음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므로. 그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받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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