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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준 호 May 08. 2024

숯불 향 가득한 에르네스토 카페

책 익는 내숲길

아내인 썬은 커피를 좋아한다. 늘 커피와 함께 일을 시작하고 맛을 즐긴다. 신사2동에 이사 온 후 늘 동네 카페가 없다고 투덜대던 썬은 하루는 진짜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를 찾았다며 요란하게 말했다. 

     

대박진짜 맛있는 커피집을 찾았어.”     


백수로 보내던 태평한 어느 평범했던 일요일 오후, 썬과 난 주중에 밀린 가사를 마치고 낮에 커피 한 잔을 먹기 위해 내숲 도서관 옆에 있는 ‘에르네스토 카페’를 찾았다.     

주인장 남자분은 참 성실해 보였다.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카페의 여러 가지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키고, 남자 사장님의 딸로 보이는 8살 내외의 한 소녀가 혼자서 공예 관련 작업 중인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 딸의 이름이 서하란 사실을 알게 됐고 초등 학년에 다니는 수다와 꿈 많은 소녀란 걸 알았다.     


썬이 자주 카페를 돌며 커피를 마시다 보니 나도 준 커피인이 된 것일까? 왠지 ‘에르네스토’ 커피의 맛은 깊고, 담백한 맛이 났다. 원두커피를 숯불로 로스팅해서 맛이 좋은 것인가? 그리고 그날부터 나 역시 단골이 돼 썬과 자주 카페를 찾았는데, 나중에 내가 백수가 된 후 인연이 더 깊어질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난 원래 커피 맛을 잘 몰랐다. 그런데 에르네스토 카페를 단골로하며 커피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생도 아는 만큼 행복해 질까?      


내숲길 내숲 도서관 옆에 가깝게 붙어있던 에르네스토 카페는 건물주가 입주하겠다며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원래 세입자는 힘이 없다. 에르네스토 카페는 몇 달을 두고 새 가게를 알아보던 중 원래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에 새 가게를 얻었다.     



새로 얻은 1층 카페 자리에는 로스터 기계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에르네스토 여사장인 형 사장님은 이때 마침 쇼핑물이 이사한다고 해서 나온 2층도 임대를 얻어 한쪽에 로스팅 실로 쓰고, 나머지 자리에 1인 1책이 들어서 2층 공간을 공유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약 10분 정도 고민했다. 마침 난 구청 홍보과에서 퇴사하고 다시 1인 1책을 해야 하는데, 머지않은 장래에 사무실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당분간 좀 쉬고 싶었는데 이것도 운명인가 싶어, 예스를 했다. 처음에는 부담감이 컸다. 다시 일로 들어간다는 것. 그동안 내 정신이 나도 모르게 더 피페해졌던 것일까? 하지만 이도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 다시 시작이다.      

카페 가게 2층 공간은 20여 평으로 비교적 넓었다. 원래 쇼핑몰 창고로 쓰이던 건물 내부를 말끔하게 리모델링을 해서 작업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한쪽에는 로스터실, 다른 한쪽에는 1인 1책의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커피를 읽고 글을 마신다.’

에르네스토 카페 & 1인 1    

 


2층 창문에 카피를 붙였다. 이런 영향 때문이었을까? 1인 1책은 1층 카페도 운영한다는 오해를 받았고 에르네스토 카페도 손님들이 1인 1책을 겸하는지를 묻는다고 했다. 즐거운 오해가 아닐까?. 일부 출판사는 건물을 사고, 1층에 북카페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에르네스토와 잘 지낸다면 1인 1책은 북카페가 그냥 생긴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내 맘대로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연결이다. 서로 다른 요소가 연결되면 시너지가 생긴다. 커피와 책쓰기가 연결되었다. 1인 1책을 다시 시작하면서 난 ‘연결만이 살 길이다.’는 명제를 되뇌었다.       


골목 보물지도

골목은 그리 넉넉한 곳은 아니다. 서로 협력하고 의지하고 도와주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커피를 파는 에르네스토와 책 관련 사업을 하는 1인 1책은 커피를 읽고 글을 마신다는 콘셉트로 자연스러운 협력을 했다. 뒤에 소개하겠지만 2023년 매달 세 번째 화요일 저녁, 모여서 책을 함께 써보자는 ‘삼화책에’ 모임을 통해 책 쓰는 골목 내 숲길 프로젝트도 공동 기획하였다. 2024년에도 지속되었다. 1인 1책에서는 사무실에 커피 음료는 준비하지 않는다. 커피는 1층 에르네스토 카페에서만 이용한다. 상부상조하자는 기본 생각이다. 2층 사무실을 공유하니 사무실 임대료 절감은 부수적인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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