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패턴
숙소 가까운 편의점에서 구할 수도 있는 샌드위치, 푸딩, 물 등을 시내에서부터 사서 돌아다니느라 고생한 건 성격 탓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못할 거 같고, 지금 사지 않으면 없을 것 같은 조급증으로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일에 방방 뛰고 당장 하지 않아도 될 것에 불안해한다.
늦은 결혼과도 일맥상통하는데 31살 되던 해 1월 만나던 남자친구와 이별하면서 결혼할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에 닥치는 대로 만나고 다녔다. 성향이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진지하게 배우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지 불문하고 그저 만나다 보니 잘 될 리 없었다. 이 사람도 아닌 거 같고 저 사람도 아닌 거 같고, 진심을 보는 눈이 없으니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음에도 놓치기 일쑤였다.
10년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고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와 맞는 사람을 볼 줄 알게 되었고 다행히 그 나이에라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지금 남편이다. 만났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루에도 수십 번씩 큰 일 났다는 생각에 조급해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한숨이 나오고 이 나이에도 미혼인 상태를 한탄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일도 잘 될 리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간이랄까? 불안장애에 가까운 조급함은 결혼이라는 본래 원인을 넘어 일과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인연을 만드는 게 잘 안돼서 일에 집중을 못하고 일이 안되다 보니 인간관계도 흐트러지고 마음이 뒤숭숭하니 결혼이 어려워지고. 뭐가 원인이고 결과인지 뒤섞여 버린 나날이었다.
성향에서 기인한 행동은 일본 여행 쇼핑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단 하루 주어진 자유시간에 살 수 있는 것, 먹을 수 있는 것 최대한 많이 사자는 압박감은 보이면 바로 사게 했다. 그릇이나 소품 같은 것들이야 다시 만나기 어려운 물품이니 제깍제깍 사는 게 여행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지만 물이나 푸딩 같은 간편식까지 보일 때마다 살 필요는 없다. 공급이 넘치고 물자가 풍요로운 나라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 파는 물건은 어디든 구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도 마비시키고 한국에서 눈여겨 두었던 것들을 보이는 대로 사다 보니 어깨가 무겁도록 메고 들고 다니게 된 것이다. 한 면세점에서 5500엔 이상 구매하면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는데 보일 때마다 사다 보니 합계가 면세 하한 금액을 넘어도 서로 다른 상점에서 산 거라 면세를 하나도 못 받았다. 예를 들면 이치란 인스턴트를 라멘 5개들이 한 팩에 면세가로는 1989엔이라면, 세금 포함되면 2156엔이다. 면세 적용이 안되면 원화로 1600원 정도 더 지불하게 된다. 금전적으로 아낄 수 있는 방법도 이용하지 못한 셈이다. 또 줄 테니까 하나씩 먹으라는 말을 못 믿고 사탕을 전부 감춰놓았다 녹아 없어지는 아이 같은 심정이랄까. 공항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까지 전부 시내 매장에서 사다 보니 10퍼센트 정도 세금으로 더 지불하게 된 것 같다.
일본은 이번이 처음이고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치고 다음에 올 때는 이런 우를 범하지 말자는 내용을 수첩에 잘 기록해 두었다. 한 편으로는 빨리빨리 구매한 탓에 주변 사람들 선물은 다 샀다는 작은 위안이라도 해본다. 오사카는 큰 도시니 하루 여행으로 볼 수 없다. 다시 올 때는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듯 사야 하는 것, 잠시 후에 사도 되는 것, 다음 날 다시 와도 되는 것을 잘 구분해 가며 여행을 음미해야지. 더불어 급해하는 심리도 조금은 다스려야겠다는 교훈을 얻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