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21세
뿔테가 내게 했던 방식. 술을 먹이고 온전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오늘부터 1일' 이런 식으로 사람을 낚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말았으면 한다 제발 좀.
제대로 얼굴을 보고 대화 나누며 멀쩡한 정신에서 사귈지 안 사귈지 판단해도 잘 될까 말까 하는데, 한 사람은 쌩쌩하고 한 사람은 저 세상 간 사람처럼 헤롱 거리는데 무슨 얘기가 되고 행복감이 있겠냔 말이다.
뿔테는 개강 파티에서 관심 있는 여자에게 딱 붙어 소주 한 잔이라는 가성비 좋고 효과 빠른 방식으로 팔짱을 끼고 스킨십을 시도하고 혼자는 위험할 것이라는 명목으로 귀가까지 시켜주었다.
술 한 잔에 압도당한 비리비리한 정신에서 다행히 하루 저녁 만에 깨어났을 때, 다음 날 학교에서 있을 다수를 즐겁게 할 온갖 루머와 뒷 일을 궁금해하는 학동들에게 '아니다, 나는 취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퍼뜨린 대로 또한 대다수 동기와 선배들이 원하고 바라고 간절히 추진되길 원했던 시나리오 대로 나는 그와 사귄다는 전개를 펼쳐주었다.
관심 있는 여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는 나이 대에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장난을 친다거나 뿔테처럼 술을 먹이고 여자친구 삼는 경우가 있는데 비추한다.
특히나 나처럼 극 I형은 장시간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리는 타입이라 순간적인 장난을 받아주거나 취기를 빌려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고 할 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일시적으로는 성공했다고 자만할 수 있으나 좋은 결말을 얻기 어렵다.
암튼 그렇게 뿔테를 차버리고 나는 과에서 세상 나쁜 년이 되어 있었다.
뿔테가 쟤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안 한 게 없는데, 심지어 뿔테는 자신의 힘든 마음을 다른 애들에게 털어놓으며 나 때문에 괴롭다고 토로했단다.
그 덕분에 나는 사랑 못 받아본 시기심 많은 몇몇 여자애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지경까지 흘러갔다. 오해가 오해를 낳고 상황이 뿔테 중심으로 흘러가자 도대체 걔가 나를 좋아해서 생긴 일이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괴롭기는 내가 더 괴로웠다. 원치 않는 교제에 그 상황에서 간신히 벗어나자 이유 없는 왕따에. 나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군중 심리를 변화시키는 스킬도 없던 나였기에 오해를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흘렀다.
내 생일은 9월 초라 2학기가 시작하는 시점이다. 생일을 명목으로 과에서는 성대한 개강파티를 열었고, 내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고 모인 이들의 속내는 실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윽고 생일 파티인지 개강 파티인지 모를 광란의 술자리가 펼쳐졌고, 나는 생일 주인공으로 자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뿔테도 왔다.
그 생일날엔 어찌나 술 마시고 싶어 혈안이 된 애들이 많았는지 심지어 다른 과에서까지 왔다. 엄청난 규모였고 대다수 애들이 망가질 정도로 취했다.
자리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 뿔테는 밖에 나갔다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몇 송이의 백합과 안개가 빨간 장미와 섞여 있는 가격대가 좀 나갈 것 같아 보이는 상품이었다. 그는 내게 성큼성큼 걸어와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뒤에서 앞으로 크게 팔을 돌려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릴 듯 꽃다발을 내 품에 안겼다.
모션이 어찌나 컸는지 온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술자리'는 금세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뿔테는 나와 달랐다. 이미지 메이킹을 할 줄 아는 애였다. 과에서 우리보다 한 살 많은 오빠는 와~ 뿔테 멋있다~ 라며 치켜세웠다. 그들은 이미 뿔테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기 손금 보듯 잘 들여다봐왔기에 그의 행동이 멋있다고 말했다.
자기를 차버린 여자, 그 여자가 눈앞에 있는 한 끝까지 챙기는 남자. 그는 그런 이미지로 멋지게 포장되었다.
또다시 한 학기가 흘렀고 뿔테는 군대에 갔다. 그가 틈틈이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대학에 왔으니 공부는 안 하겠다고 한 결심을 최선을 다해 실천했는지 학점은 F가 난무하다고 전해 들었다.
이후 뿔테를 영원히 만나지 못했고, 들려온 소문에 의하면 입대를 위해 같이 휴학했던 동기들과 함께 전역 후 무사히 학교로 복귀했다고 한다.
시대의 순정남으로 자기 여자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남자로 기억된 뿔테.
이윽고 그가 없는 학교 생활의 시작되었다.
나는 그 현장에서 또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