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는 읽지 마시오*
나는 원래 무언가에 대한 불호를 대놓고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싫어해도 다른 사람은 좋아할 수 있으니까. 괜히 분란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비겁한 성정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내가 확실히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양파다. 양파는 내 인생에 큰 걸림돌이다.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의 편식은 고쳤다. 예를 들어, 나는 고추는 좋아하는데 피망은 싫어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생물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말했다. 고추와 피망은 유전적으로 똑같아... 그 뒤로 피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고추는 생고추를 먼저, 피망은 익힌 피망으로 먼저 접해서 편식이 생겼던 것 같다. 어쨌든, 애호박과 같이 어떤 채소는 즐기진 않지만 미각을 포기하고 삼키는 정도까진 가능해졌다. 그러나 양파는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다.
양파 편식은 다른 채소 편식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령 누군가가 오이를 싫어한다고 해보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 사람의 냉면 위에 올라가는 오이채를 내가 먹으면 되겠구나'이다. 그러나 내가 양파를 싫어한다고 말해보자. 그럼 이 사람과 대체 무엇을 같이 먹을 수 있지? 갑자기 아득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이 싫어하는 채소를 패널나우에서 비공식으로 조사해 본 결과, 양파는 순위권에도 없었다. 1위는 가지.
한식에서 양파가 안 들어간 요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온갖 국과 찌개 종류에는 당연히 들어가 있고, 잡채나 샐러드, 카레 같이 여러 채소가 어우러지는 요리에 양파는 빠지지 않는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먹기 힘들어하는 것은 양파를 넣은 감자 사라다이다. 차라리 큼직하게 썬 양파는 골라낼 수라도 있지, 이렇게 갈려서 형체가 안 보이는 녀석들에겐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한식뿐이랴, 아직까지 양파를 싫어하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 옆나라 일본은 정말 양파를 좋아한다. 간장에 설탕에 된장에 양파를 졸여서 먹는다. 오야코동을 처음 시켰을 때, 닭고기와 길게 채 썰린 양파가 실처럼 풀어진 달걀에 꽁꽁 엉켜 있는 걸 보았다. 약간의 배신감과 큰 곤란함을 느꼈다. 독일로 도망가서 소시지 한 접시를 시켰다. 소시지가 천사채처럼 폭신하게 깔린 양파 위에 누워 있었다. 소시지의 뽀득뽀득한 껍데기 위로 미끈한 양파즙이 묻어버렸다. 머스터드에 빡빡 닦아서 겨우 한 입을 먹을 수 있었다.
이 밑으로는 정말 양파를 산산조각 내는 표현만 있을 테니, 양파는 읽지 말고 뒤로 돌아가길 바란다.
나는 정말 유명한 양파 탐지기라 양파가 0.03 퍼센트만 함유되어 있어도 알아차릴 수 있다.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샀는데, (겉으로는 양파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골랐다.) 비닐을 열자마자 양파의 시큼하고 독한 냄새가 퍼졌다. 대체 뭐지? 하고 빵을 들어 양상추 밑을 확인했는데, 실험실 표본 마냥 작게 잘린 양파 한 조각이 들어 있었더라. 양파는 냄새뿐만 아니라 식감도 끔찍하다. 앞니로 양파 조각을 살며시 끊어본 뒤 단면을 보았다. 하얗게 불투명한 단면이었다. 빛을 맹탕하게 가둬버리는 질감이 유리창을 마감하는 실리콘 같았다.
양파 냄새와 식감은 익히면 사라진다 하여, 그놈의 캐러멜라이징을 시도한 적이 있다. 내가 하나 깨달은 사실은 채소에서 어쭙잖게 단맛이 나면 더 괴롭다는 것이었다. 불을 만난 양파는 즙을 내뿜고, 즙은 적당히 졸여져 끈적해진다. 그 끈적한 양파의 잔해가 입천장과 혀와 미뢰, 어금니 사이사이에 껴버리고 만다. 양파는 목구멍으로 넘겨 위로 들어간 후에도 문제다.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처럼 식도와 위에 양파 즙이 묻는다. 그리고 양파가 위 점막에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위가 요동을 친다. 위액이 양파 조직을 전부 녹여버리기 전까지 그것은 자기 존재감을 뽐낸다.
젓가락으로 양파를 하나하나 골라내고 있자면, 사람이 그렇게 옹졸해 보일 수가 없다. 음식점에서야 어른들께 한 소리 듣고 끝내면 된다지만 문제는 누군가 정성껏 해준 음식에 양파가 가득 들어 있을 때였다. 독일에서 친구가 그 귀한 김치를 사용해서 김치찌개를 끓여줬었는데, 양파가 반이었다. 먹고 죽는 한이 있어도 삼켜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친구는 웃으면서 내가 양파 좋아하니까 언니 몫까지 다 먹어야지! 하고 말했다. 그때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마무리하자면, 나에게서 어떤 비밀을 캐고 싶다면 의자에 묶어 놓고 양파를 들이밀면 된다. 양파가 입술에 닿기 직전에 원하는 것을 나불댈 테니 괜히 고문한다고 힘 빼지 마시길.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혼란스럽게 해서 죄송하지만, 양파링은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