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 앉아 있으니 잉카 전통 스타일의옷을 입고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눈길이 갔다. 그녀들은 모두 검은색 머리를 허리까지 양갈래로 길게 땋아 내렸다. 그리고 색감의 화사함과 대비되는 위, 아래 의상의 불균형적인 모습이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스커트가 왜 저래? 본디 저렇게 엉덩이가 큰 거야?”
남자들도 호기심이 생기는지 구시렁 거린다.
가는 곳마다 무지개색 줄무늬의 망태기를 짊어지고 챙이 높은 모자를 쓴 채 뒤뚱거리며 걷는 여성들의 옷 속이 매우 궁금했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인디오적인 색채가 강하여 길거리에서 이들의 전통복 스타일을 많이 볼 수 있다. 알고 보니 이러한 복장의 여성들을 촐리타(cholita) 혹은 촐라(cholla)라고 불렀다. 이 명칭은 식민시대에 스페인 사람들이 메스티소와 혼혈인들을 촐로(cholo)라 낮춰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들이 입은 여성복에서 상의는 대부분 간단한 형태를 보인다. 그러나 하의는 화려한 색상으로 직조된 자연무늬나 기하학적 무늬의 것을 주로 입고 있다. 이 직물들은 인디오들이 손으로 짠 수제 양모 제품이다. 야생화를 뿌려놓은 듯 꽃무늬로 수놓아져 옷감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저 옷감들 전통시장에서 팔려나? 사가지고 가서 원피스 만들어 입고 싶네?’
옷감도 그렇지만 스커트의 볼륨과 형태도 드레스라 칭할만하다. 허리선이 H형 돔(dome)처럼 생긴 하의는 ’ 포예라(pollera)’라고 한다. 스커트를 가까이에서 보니 허리에 촘촘하게 실로 떠서 풍성하게 주름을 잡았다. 주름을 잡은 실 한 땀 한 땀에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었다.촐라들이 입는 허리둘레가 넉넉한 주름치마를 펴 놓으면 6m가 족히 된다고 한다. 폭의 넓이와 비례해서 무게도 대단할 거라 추측된다. 뿐만 아니라 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포예라의 안에 두겹의 치마를 입거나 빳빳하게 풀먹인 속치마를 입어 볼륨감을 준다.스커트 구조에서 그녀들의 무거운 걸음걸이가 이해되었다.
‘아! 피렌체성당의지붕돔 보다 더 풍만하구나’
작은 키에풍성한 주름치마를 입고 가는 촐리타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러한 잉카문명의 전통복 역사를 알고 보니 매우 모순을 느끼게 된다. 포예라는 현대의 잉카인들에게 자부심의 상징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원래 식민지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입도록 강요한 간단한 스페인 복장이었다. 16세기 스페인 정복기에 도입된 이 유럽 의상을 식민지 통치자들이 원주민들에게 강제로 입게 했다. 결국 이 스타일은 안데스 지역 의상의 일부로 정착되었다. 현재를 살고있는 촐리타는 과거를 상기시키는 존재이며, 그 복장에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도 든다.
이제 포예라는 남미의 명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명품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나 예술품’ 이라는 의미이다. 이름난 물건은 아니지만 장인의 수제직조와 묘하게 어울리는 색감, 정성 어린 한땀 한땀의 핸드메이드 스커트는 파리의 오뚜뀌뚜르와 같은 명품의 가치가 충분하다.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촐리타 한 사람이 관광지 한쪽에 가족과 서있는 것을 보았다. 멀리서 흥미롭게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올라(Hola)”
가까이 다가가서 엄지 척을 하며 ‘의상 스타일이 멋지다’는 표현을 했다. 그 멋쟁이 할머니는 나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했다. 잉카인들은 영혼을 빼앗긴다며 사진 찍는 걸 싫어한다던데…. 그녀와 다정한 포즈로 사진 촬영후큰소리로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