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빌딩에 빠지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 자체로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왜소한 몸집 탓에 무시당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영화과에 진학한 나는 촬영용 카메라나 조명 등 중장비를 들 때면 남들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받아야 했고, 때로는 “들 수 있겠어?”라는 식의 은밀한 무시랄지 “왜 이렇게 마른 애들만 왔어.”라는 식의 노골적인 무시를 감당해야 했다. 나는 그때까지 말랐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남들의 무시 덕분에 내가 말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게 되었다. 한번은 촬영용 사다리를 들고 온 한 여자 동기에게 “들 수 있지?”라는 말은 들은 적도 있었다. 본인이 들고 온 사다리를 건네며 노골적으로 그런 질문을 하는 저의를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몹시 불쾌했던 것은 분명했다. 나는 그저 외관만으로 노골적이고 때로 암시적인 무시를 버텨야 하는 세계의 가혹한 논리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내게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이 징글징글한 논리에 억눌리며 살 것인지, 몸집을 키워 벗어날 것인지.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렇게 시작된 보디빌딩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물리적인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날을 제외하곤 언제 운동을 할 것이며, 어떻게 할 것인지, 또 얼마나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항상 따져 고민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질병에 걸렸어도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운동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운동은 삶에서 결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운명이 되어 버렸다. 간혹 권태에 빠지는 시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운동을 놓은 적은 물리적으로 바빴던 날들을 제외하곤 없었다. 이러한 열정은 처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증량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날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근력이나 몸집과 관련해서는 한 번도 무시당한 적이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사람들은 날 엄격한 자기 관리의 표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무시와 소외는 단숨에 존중과 경외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자존감은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효과감소 법칙이라는 삶의 진리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거대해진 몸과 자기 관리에 관한 칭찬은 언제나 반가웠지만, 그 효과는 갈수록 감소했다. 이제는 그런 말을 들어도 으레 건네는 인사말이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시큰둥하게 넘기게 된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게 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동력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보디빌딩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일까. 나는 왜 이 운동에 미쳐있는 걸까.
가끔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할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여기에는 헬스장이라는 장소의 기묘한 공간성이 한몫한다. 헬스장은 수많은 사람과 함께 운동하는 공유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기구별로 구획된 자기만의 독립적인 공간에 위치한다. 그들은 그 넓은 곳에서 일정한 개인 공간을 대여받는 듯 움직이고 행동한다. 누군가는 그 독립성을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해 노이즈캔슬링 이어폰과 헤드폰을 착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개인 공간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간혹 시선의 침범을 경험할 때를 제외하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앞에 놓인 바벨과 덤벨을 오로지 들고 내려놓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잡념이 사라진다. 헬스장에 아무리 시끄럽고 요란한 최신 음악이 울려 퍼져도 내면은 숨이 멎을 듯 고요하다. 요컨대 보디빌딩은 진절머리 나는 사회적 관계가 초래하는 스트레스와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해방감을 선사한다.
그 거칠고도 느긋한 평안. 이와 관련해서 최근 주목받았던 ‘멍 때리기 대회’가 떠올랐다. 이 대회의 요지는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던 멍 때리기가 온갖 걱정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뇌의 과사용을 방지하고 휴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멍을 때리면서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집중력과 창의력이 높아지고, 한편으론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는 세트 간에 온전히 휴식을 취하면서 한 가지 일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보디빌딩이 잡념을 사라지게 하는 멍 때리기와 사실상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나는 운동을 하면서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거나 복잡했던 고민이 쉽게 해결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리고 이따금 복잡해서 욱신거리던 뇌가 편안히 이완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디빌딩의 주된 동력, 즉 가시적인 몸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람들의 환영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그것은 특정 시기까지는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자랑하지만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다. 보디빌딩의 진정한 매력은 그 특유의 자발적 고립이 안겨다 주는 고요함과 평안이다. 어쩌면 나는 보디빌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요함과 평안을 사랑하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