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업무 중 청결에 대하여
며칠 전에 정말 엄청나게 바빴을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 내 위치는 에스프레소 추출, 내 동료는 음료를 제공하는 위치였다. 주된 업무는 이러했지만,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손이 남는 대로 다른 것까지 계속 도와야 했다.
사건의 발단은 일반 원두와 디카페인 원두 주문이 뒤섞여 들어올 때, 순간적으로 우리 둘 다 어떤 에스프레소가 디카페인 원두였는지 헷갈렸다.
내가 다시 추출하겠다고 했는데 내 동료는 컵에 코를 대어 냄새를 맡아 구분한 뒤 커피를 제공했다. 아마도 뒤에 밀린 주문서들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냄새를 맡아보면 큰 어려움 없이 구분은 가능하다. 다만, 이 주문을 한 고객이 바의 바로 옆 테이블에서 우리가 제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아니, 지켜보는 건 문제가 아니지. 바쁘다 하여도 그거 하나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나와, 대놓고 음료에 코를 갖다 댄 내 동료, 우리의 문제지.
부부가 같이 온 테이블이었는데, 남편분께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아내가 카페인에 굉장히 민감하여 그러니 제조를 다시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우리가 헤매는 모습과 커피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모습까지 본 부부는 정말 제대로 구분한 게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기에 찝찝함을 참다 참다 말씀하러 오신 거였다. 암, 당연히 다시 해드려야지.
다시 만들어 가져다드리며, 내리는 도중에 헷갈려 한 바람에 찝찝함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는 말과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렸고, 다행히 이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바리스타가 있는 바를 누군가는 무대라고도 말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일정 부분은 맞다고 생각한다. 바에서 일어나는 일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많지만, 간혹 정말 무대를 바라보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픈 바(Open Bar) 카페에서 근무하는 바리스타라면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몸과 마음이 언제나 조금 더 긴장 상태여야 한다.
바 안의 일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오픈 바 카페를 방문한다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광경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리스타는 늘 이 지점을 경계하며 행동해야 한다.
보이는 것이라면 많은 것이 있을 테지만 오늘은 앞의 이야기에서와 같이 청결과 위생이 주제다.
완전한 무균실로 만드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지만 귀찮음에 잠식되어 청결과 위생을 져버리는 행위는 가급적 피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귀찮음을 감수하더라도 피해야 할 행동엔 무엇이 있을까? 내 얘기는 언제나 늘 그렇듯 지금, 혹은 여태까지 내가 있었던 곳에서의 일들이 예시가 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해답을 찾길 바란다.
식기세척기에서 나와 설거지가 끝난 컵은 바로바로 물기를 닦아 뒤집어 두는 게 최고일 테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약간의 시간을 두어 말리는 곳이라면 컵이 마름과 동시에 재빨리 뒤집어 놓는 게 좋다. 너무 긴 시간 동안 방치하거나 그 상태로 퇴근한다면 당연히 컵 안에 먼지가 쌓여갈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뒤집어도 습기가 차지 않고 잘 마르는 밑면에 구멍이 뚫린 트레이를 사용하는 것일 테다.
베이커리를 판매하는 곳이라면 진열된 상품을 간단한 비닐이나 베이커리 전용 트레이를 사용하여 외부 오염으로부터 막아야 할 것이다. 물론, 최고의 방법은 낱개 포장일 테지만 말이다.
음료 제조 중 컵에 조금 흘려 닦아야 하는 상황엔 바 행주 대신 컵을 닦는 전용 행주를 사용하는 것, 주기적으로 손을 씻는 것, 다소 헐거운 긴팔을 입었다면 소매가 닿지 않게끔 잘 접어 입는 것 등등, 당연하게 들리고 너무 쉬워 이걸 왜 못하냔 생각이 들겠지만, 막상 해보면 귀찮아서 생략하는 사람이 태반이란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음료 제조뿐만이 아니라 청결 부문에서도 일종의 쇼맨십이 가능한데, 이러한 쇼맨십은 오픈 바에서 꽤 좋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티백을 개봉하고 컵에 옮길 때 맨손으로 잡지 않고 집게를 사용하는 것, 틈날 때마다 행주를 새로이 빨거나 샷 글라스와 각종 기물을 닦고 그라인더 주변의 원두 가루를 정리하는 것처럼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무수히도 많을 것이다.
자신이 결벽증이라면 그냥 평소의 기준대로 하면 되고, 만약에 자신이 평상시에 깨끗한 편이 아니라면 본인 기준에 '아, 이건 너무 과한 거 아니야?'란 생각이 드는 수준까지 해야 대다수의 사람에게 청결하단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찾아보면 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할 것이다. 분명 청결을 져버리는 행위인데 일하는 입장에선 너무도 익숙해져서 문제 인식조차 못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매장을 방문하는 누군가에겐 그게 꽤 큰 문제로 보이고,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이 아무런 말 없이 그냥 발길을 끊는다. 이게 지속된다면 어떻게 끝날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내가 며칠 전 고객께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오픈 바라는 이유로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데 나 혼자서 섀도복싱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평소의 이러한 연습이 결국 경기에서 빛을 발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 경기가 무슨 경기일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