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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현 Apr 09. 2024

경험

커피 센서리에 대한 소고(小考)

지난달 빈 브라더스 퍼블릭 커핑에 다녀온 날의 일이었다.


여덟 종이 모두 에티오피아 원두라는 것 이외의 정보는 마시는 동안 비공개였는데 커핑 뒤에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는 시간에 한 여성 참여자분께서 두 번째 컵의 지역과 가공 방식을 맞혔다.


2018년도에 마셨던 에티오피아 구지 우라가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그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아마도 같은 산지의 커피가 아닐지 하는 추측이었다.


나는 옆에서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저게 어떻게 되지…?'라는 의문만 가득했는데 커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불현듯 나의 옛 경험이 떠올랐다.


3년 전 약 처방과 상담 차원에서 방문했던 정신과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정신과를 다녀와 본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그곳에선 언제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격정적인 곡을 철저하게 배제한 정신과의 플레이리스트는 5분만 듣고 있어도 잠이 솔솔 오는 음악의 탈을 쓴 수면제 그 자체인데 화룡점정으로 음량마저 사람을 재우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서정적이고 조용한 곡 다음에 나온 곡은 조금은 경쾌한, 내가 손에 부리나케 연습했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1악장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집중하며 듣다 보니 연주 스타일이 굉장히 익숙했다. '어? 이거 아시케나지 연주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핸드폰을 켜 음원 검색을 시작하였다. 내 예상대로 그곳에서 흘러나오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아시케나지의 연주였다.


허나 내가 연습할 때 자주 듣던 것은 그의 연주가 아니었다. 켐프나 박하우스를 필두로 브렌델, 바렌보임의 연주까진 많이 들었지만, 아시케나지의 베토벤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베토벤을 연주하는 아시케나지가 익숙지 않은 것이었을 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그였기에 단시간에 그의 연주라는 걸 알아차린 것뿐이었다.


내가 청각이 뛰어나거나 음악적 기억력이 좋아 맞힌 게 아니었던 것처럼 여성분께서 커핑 원두의 지역과 가공 방식을 맞혔던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 여성분께서 집중하며 마시는 커핑 자리가 아닌 바쁠 때 목을 축이기 위한 용도로 마셨던 커피 정도였다면, 내가 정신과에서 조용히 집중하며 들은 게 아니라 걷다가 무심코 듣게 되었다면, 그래도 기억할 수 있었을까?


굉장히 인상 깊었던 커피라면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집중력이 그 커피로 옮겨가 결국엔 알아맞혔을 것이다. 집중.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닐까.


커피 센서리(Coffee Seonsory)를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바리스타에게 중요한 관능 평가 능력에서 감각의 선천적 예민함이 요구되는 순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경험을 쌓는 시간과 그 경험을 잘 정리하여 데이터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론이 없는 경험은 맹목적이고, 경험이 없는 이론은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커피 리브레에서 번역한 스콧 라오Scott Rao의 커피 로스팅The Coffee Roaster's Companion에 인용된 칸트의 이 문장은 내 지난 몇 년간 바리스타로서의 실수를 짚어주는 듯하다.


센서리를 불가능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경험을 등한시하며, 글로만 커피를 배워가던 지난날과 그때와 비교해 비록 아직도 특출난 것 없이 부족함이 많은 바리스타이지만 그래도 요즘 들어 종종 보이는 조금은 성장한 내 모습. 앞으로도 실수야 계속하겠지만 이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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