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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현 Mar 14. 2024

일관성

바리스타 업무에서의 일관성

커피를 만듦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한 질문에 바리스타마다 각기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커피의 맛이 최우선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만들어진 커피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고객이 몰리는 바쁜 시간대에 주문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시될 수도 있다.


위의 것들 모두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누가, 언제 오더라도 모두에게 같은 한잔을 제공할 수 있는 일관성이다.


평소와 다른 컵을 내어드리며 바쁘거나 힘들다는 것을 핑계 댈 순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짧은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대부분의 바리스타가 맛있고 예쁜 한잔을 신속히 만드는 데는 능하다.


다만 그 한잔을 계속 유지하며 수백 잔을 만드는 건 소수이다.


일관성에 대해 말하기 전에 커피 추출에 있어 대전제는 '지금 만들 커피와 다음에 만들 커피를 100% 동일하게 만들 수 없다'이다.


원두의 재배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분쇄하였을 때 각각 다른 입자 상태와 추출 간의 편차를 고려해 보면 100% 동일한 커피를 만드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나를 포함한 바리스타나 커피 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같게끔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위치에서 각자 나름대로 고군분투 중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 여부에 따라 비록 완전히 동일하진 않을지언정 사람의 감각으론 구분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일관성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바리스타의 업무 중 일부분인 커피 제조 부문만 보아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다른 남은 업무에 적용해 보아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장 곳곳을 청결한 상태로 만드는 것 자체는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청결한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이 청소 한 달 전에도, 일주일 전에도 했고 심지어 어제도 했는데 오늘 또 해야 해? 별로 안 더러운 것 같은데?'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울릴 때가 있다.


이 울림을 견디어 몸을 움직이는 게 너무나 어지러워 내일로 미루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미루는 건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저런 생각에 잠식되는 것일 텐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만 생각나듯 생각을 끊으란 말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문에서 나름 강한 편인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일단 움직이는 것이다.


마감 때 테이블 정리를 해야 하지만 너무나도 귀찮은 상황을 예로 들자.


정리할 마음으로 움직여 나가라는 말이 아니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퇴근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움직여 나가란 말이다.


이것을 몇 번 한 뒤엔 손에 행주라도 들고나가고, 그다음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나간다.


도화지는 하난데 그린 그림을 지우기가 어렵다면, 그 위에 덧대어 그려 원래 그림을 덮는 것처럼 조금씩 다시 그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몸으로 하는 일이 으레 그렇듯 어느 순간 체화가 되는데 그때부턴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먼저 그냥 하게 된다.


이렇듯 바리스타의 업무에 있어서 중요한 건 루틴과 체화이다.


우리가 주기적으로 해야 할 일은 지금의 루틴에 하자가 없는지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루틴을 반복하여 체화하는 게 전부이다.


어찌 보면 모든 직장인의 숙명인 출근과 비슷하다.


누구든 귀찮고 힘들지만 출근하기 위해 일단 움직인다. 그게 시작이자 전부일 것이다.


일관성을 위해 우리가 재고해야 하는 건 융통성이다.


그날 하기로 정한 일이라면 곧 죽어도 그날 무조건 하란 말은 아니다.


하지만 꽤 많은 사람이 상황과 형편에 맞춰 적절히 처리하기 위해 가장 적절치 않은 방법을 선택한 뒤 융통성이란 말 뒤에 숨곤 한다.


때 되면 한다는 마음가짐은 이따금 때를 놓치게 하고, 때에 맞춰서 하려다가 어느샌가 서서히 자신에게 때를 맞추곤 한다.


우리가 출퇴근을 융통성 있게 하지 않듯이 때로는 고지식한 면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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